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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환의 '곡신(God of Valley, 1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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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환의 '대화(Dialogue, 2022)' |
오수환은 작품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수환에게 중요한 마음가짐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캔버스 안에 담느냐가 아니다. 반대로, 그 생각을 없애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無我行(무아행). 자신의 존재가 없는 상태가 되도록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수환의 작업에 대한 철학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단어 중 하나다.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추상 세계를 그려내는 오수환의 기획초대전 '無我行(무아행)'이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 한 점 한 점과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하다 보면, 마술 같이 한 스푼 두 스푼 마음이 비워지고 내려 놓아지는 것만 같은 오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오수환은 1969년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1996년에는 김수근 문화상을 수상했다. 이번 기획전은 대구에서 20여 년 만에 열리는 오수환의 개인전이다. 보기 힘든 작가의 1980년대 구작부터 현대작, 근작에 이르기까지의 작품을 모두 보여주는 첫 전시인 동시에, 작가의 드로잉을 만나볼 수 있는 첫 전시다. 전시 주제인 무아행이 함의하듯, 실체가 없는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끄집어낸 본성을 색과 기호, 선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깊이있게 조명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
석은조 인당뮤지엄 관장은 "처음에는 작가의 소속갤러리인 '가나아트'에서 작품을 빌려 올까 생각했는데 작업실에 가보니 작품이 정말 많았다"면서 "이번 전시 작품의 90%가 미공개작이다. 작업실에 쌓여있던 작품들을 직접 골라 온 것으로, 작가가 심지어 '발굴'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작가조차도 30년 만에 본 그림을 적잖게 선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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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환의 '無我行(무아행)' 전시 모습.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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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환의 '無我行(무아행)' 전시 모습. <박주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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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환의 '無我行(무아행)' 전시 모습. <박주희기자> |
오수환은 언어로 쉽게 말할 수도 없는 것들을 획의 에너지와 붓질의 흔적으로 담아낸다. 그의 작품 세계는 내면을 살피고 우연의 생생한 힘들에 자신을 내맡기고자 한다. 그가 펼치는 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동양적인 철학을 서양의 기법과 서양의 도구들로 풀어낸다는 것이다. 부친이 유명한 서예가인 오재봉 선생으로, 그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에는 서예적 요소가 가득 녹아 있다.
이 같은 그의 작품세계는 국내외 미술계에서 큰 관심을 받아, 2006년 프랑스 매그 재단의 초청으로 '생폴 드 방스'에 머물며 작업하는 시간을 가졌고 국내 다수의 미술관 전시에도 작품을 출품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당뮤지엄의 로비와 5개 전시장에는 오수환의 대형 작품 총 42점을 선보인다. 특히 2점을 연결한 독특한 작품과 인당뮤지엄의 장점인 높은 천고와 기운이 생동하는 화폭이 만나 발하는 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1전시실에서는 1980~90년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 중 2m가 넘는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 '곡신(谷神, God of Valley, 1989)'이 눈길을 머물게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단어인 '곡신'은 골짜기의 텅 비어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무위자연의 모습으로 만물이 모여드는 근원을 의미한다.
4전시실의 작품 '대화(Dialogue, 2022)'에서는 화면에 가득 찬 노란빛에 의해 밝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지나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흰색과 푸른색 선들의 움직임은 생명력과 활기를 표출한다. 작품에 층층이 쌓인 요소는 물감과 물감이, 물감과 붓이, 작품과 관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교감하길 원하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전시 관람은 인당뮤지엄 홈페이지(https://museum.dhc.ac.kr/main)를 통해 사전예약 또는 현장 접수가 가능하다. 또한 VR 전시와 전시 영상,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도 감상할 수 있다. 일요일은 휴관이며, 전시는 10일까지. (053)320-1855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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