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고흥 예술의 섬 '연홍도'…지붕 없는 미술관…눈길 닿는 곳마다 예술

  • 김찬일 시인·방방곡곡트레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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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20 08:10  |  수정 2023-01-20 08:15  |  발행일 2023-01-20 제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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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홍도 방파제의 흰뿔소라고둥 조형물.
선착장 여행객 반기는 '대형 소라고둥' 조형물
마을 담벼락엔 주민들 추억이 담긴 사진벽화
해안도로 곳곳 그림과 정크아트로 수놓여
폐교를 문화공간 리모델링한 '연홍 미술관'
좀바끝 숲길 지나면 반달 모양의 해변 절경


남해는 푸른 옥빛이었다. 영화 예수에서 보았던 주인공 예수의 눈빛처럼. 고흥 거금도 서쪽 끝 득량만 바다 나들목에 있는 연홍도는 그 푸른 바다 위에 그림처럼 떠 있었다. 섬에 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는 것은, 기대와 열망을 가슴에 가득 채우는 '달고나 시간'이다. 승선 인원이 많아 나는 다음 배를 타기로 했다. 거리래야 불과 약 600m 남짓. 왕복 10분이면 된다고 한다. 내가 건너기 전에 남을 먼저 건너게 한다. 연민과 사랑의 푸른 눈빛을 가진 바다를 바라보며 오늘만은 앞서가야 한다는 경쟁의 속도를 내려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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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홍도 해안의 정크아트 물고기 작품.
한국의 나오시마 예술의 섬, 지붕 없는 미술관 연홍도에 발을 디딘다. 아치문에 '가고 싶은 섬 연홍도'가 적혀있다. 비록 연홍도가 아닐지라도 섬은 우리가 언제라도 가고 싶은 곳이다. 하물며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연홍도임에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섬은 꽃이고 별이다. 섬은 푸른 그리움으로 출렁이는 바다에 떠 있는 신의 작품이다. '연홍아 놀자'로 표현한 왼쪽 방파제에는 대형 흰뿔소라고둥 조형물이 여행객을 반긴다. 이 지역 특산물인 소라고둥을 형상화한 것이다. 지난날 가난과 눈물로 살아가던 섬사람에게 소라고둥은 애면글면한 용돈이었고 주전부리 먹거리였다.

연홍도 커뮤니티 센터를 지나고 마을로 들어선다. 형형색색의 지붕이 알록달록 모자이크다. 마을 담벼락에 '연홍 사진 박물관'이 있다. 주민들의 옛 추억을 담은 사진 200여 점이 곰비임비 타일 벽화로 붙어 있다. 학교 졸업과 여행, 결혼 등이 얼개를 이루고 있다. 이 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박제해 놓고 어디로 흘러갔을까. 이 사진의 추억, 말하자면 그들의 추억은 나의 추억으로 곧장 통하는 통로였다. 좀 더 걸어 나가자, 골목 입구에 거금도 출신인 왕년의 프로 레슬러 박치기왕 김일 선수와 연홍도 출신 프로 레슬러 두 명의 벽화가 있다. 그중 백종호 선수는 '낮에는 은행원, 밤에는 레슬러'였는데, 영화 반칙왕(2000년에 개봉)의 실제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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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홍도 방파제에서 말리고 있는 멸치.
길 따라 더 나아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아르 끝 둘레길'과 '연홍 미술관'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섬의 작은 언덕배기에 마치 삼족오의 다리처럼 세 가닥 길이 트여 있다. 먼저 연홍 미술관 가는 길로 내려간다. 해안을 따라 걷는다. 가로등에 깜찍한 벌 한 마리, 벌 모양의 스피커다. 그나저나 발치에 파도 소리가 스며들고, 해안가를 따라 곳곳에 예술 조형물이 설치된 길을 걷는다. 저 스피커에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라도 흘러나온다면 사랑에 실패한 청년의 얼어붙은 감성이 녹아내릴 텐데. 바다 건너엔 금당도와 완도가 보인다. 우뚝한 해안절벽이 비경이다. 그 바다에 제주와 녹동항으로 오가는 대형 여객선이 느리게 안단테로 간다.

골목과 해안도로에 그림과 조형물 60여 점이 눈에서 감성을 퍼 올린다. 이런 정크아트(재활용품으로 만드는 예술작품)가 어떻게 이렇게 예술적인 흡인력으로 우리를 몰입에 빠뜨리는지. '커져라. 모두의 꿈'도 보고 붉은색을 입힌 여인의 흉상도 살핀다. '꽃과 소녀', 기계 부품으로 조립한 '대형 물고기'도 망막에 착 달라붙는다. "햇빛에 자연 건조하는 멸치, 칼슘의 왕, 고흥 멸치는 '저염'입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고흥 멸치들의 일광욕, 그것도 하나의 빛의 예술로 보인다. 그 부두에 한가로운 빈 배 한 척이 홋줄에 매여 있다. 배 위 빈자리에 바닷바람과 햇빛 그리고 파도를 밀어내는 허공이 단전 호흡을 하고 있다. 빈 배는 마치 달마의 면벽처럼 우리의 본모습이 허공임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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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홍도 선착장과 연홍도 풍경.
'연홍 미술관' 안으로 들어간다. 폐교하고 8년 동안 방치된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개관하였다. 그 안에는 50여 평의 전시실과 60명이 쉴 수 있는 숙소까지 만들었다. 이 섬 출신인 김정만 화백의 고향 사랑이 이렇게 문화예술 공간을 만든 것이다. 지금은 선호남 관장이 관리하고 있다. 전시실에는 150여 점의 작품을 항상 전시하며, 시간이 지나면 그때그때마다 전시 작품을 교체한다고 한다. 그림 중 '지나고 나면 결국은 다 웃어넘기는 것들'(눈길. 김인원),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것이 다 꽃봉오리인 것을'(정현동 詩 중에서)이 시선을 끈다. 그러구러 밖으로 나온다. 섬나라 미술 여행에서, 단 하나 정수리에서 활짝 피는 '해바라기 그림'(무명 화가의 작품)이 노란 환상으로 이글거린다. 해변에 '사랑'이라는 제목의 조형물이 있다. 그리고 하늘 담은 오름길 정상에 있었던 연홍 교회. 그 오마주. 해바라기와 사랑, 교회. 그 눈에 핏발이 서는 실루엣 때문에. 나는 나의 시(詩) '코흐의 해바라기'를 소환했어야만 했다.

'해바라기는 코흐의 꽃이다. 코흐는 노란 집에서 노란 해바라기를 그렸다. 햇살의 뜨거운 색채로,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해바라기를 그렸다. 자기의 마음에서 물결치는 노란색. 이곳에서가 아니고 저 위에 더 많은 색과 햇빛을 보기 위해, 거기에 영혼이 있었다. 고흐는 그를 그리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말만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죽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었다. 오직 그만이 영생을 자신했고, 시간의 무한성, 죽음의 무의미함, 죄의 심판을 용서하는 사랑과 복음을 노래했다. 희미하게 가물거리는 노란빛 면류관을 쓴 그리스도의 환상을 볼 적마다. 마음에 타오르는 불과 살아있는 어떤 것이 사랑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그림도 한낱 꿈이었음이 물음의 영원한 답이 되었다. 해바라기 그림은 영혼의 꽃이지만, 말씀을 그릴 수는 없었다.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다. 그의 말씀을 더 듣기 위하여. 그리고 1890년 7월27일 879점의 그림을 남기고 권총으로 자살했다. 밤하늘에 활짝 피는 밤의 해바라기, 별을 향해 걸어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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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 (시인·방방곡곡트레킹 회장)
조형물과 미술 작품 속을 걷는 것은, 별을 향해 걸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럭저럭 좀바끝 숲길로 간다. 반달 모양으로 휘어져 있는 해변은 절경이다.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은 자연이 빚은 조각품 같았다. 내가 걷고 있는 해안 쪽은 해송들이 배흘림으로 우거져 있다. 해모가지 갈림길을 지나자 해안전망대가 나타났다. 팔각정자인 전망대에 올라서 조망한다. 환상의 뷰 포인트다. 금당도 완도 방향은 시야가 더 멀리 넓게 잡히고, 거금도 소록도도 말을 걸어온다. 너무 아름답다. 단연 섬의 샹그릴라다. 내려와 좀바끝으로 간다. 앙상한 잡풀밭 지나 좀바끝 이정표에 선다. 여기도 풍광이 뛰어나고 새롭다. 돌아 나오면서 바닷가로 내려간다. 해안은 깨끗하고 맑다. 해모가지에서 오름을 타고 걸어온 길에 합류한다. 선착장으로 나오기 위해 해안 둘레길로 들어선다.

이제는 작은 사슴을 닮았다는 소록도가 성큼 다가온다. 인어 조각상을 만난다. 정말 아름답고 고결한 모습이다. 지구의 생명은 그 기원이 바다였다. 최초의 작은 아메바가 생명의 모태였다. 인간은 바다에서 뭍으로 진화해온 등 푸른 물고기였는지 모른다. 인어의 가슴 아래 물고기 형상이 단지 상상만의 세계일까. 어머니 같은 바다를 보며, 깨우친 통찰이 현실을 사랑으로 감싼다. 트레킹을 통해서 자신을 회복할 때, 바람은 기도가 되어 불고, 사랑은 구름처럼 저 하늘까지 흘러간다. 선착장에 나오니 배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현재에 살았다. 과거에 묶이거나 미래를 상상하지 않았다. 예술과 바다와 섬은 현재의 경험이었다. 우리는 현재에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과거와 미래는 현재에서 하나의 전체가 되었다. 오늘은 내적 공허감이나 박탈감이 없는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의미 있는 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글=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백계분 여행사진 작가

☞문의: 고흥 연홍도 관광안내소 (061)842-0177

☞내비 주소 : 전남 고흥군 금산면 신촌리 1421-5(신양선착장) 선박이용

☞트레킹 코스 : 연홍 선착장 - 연홍마을길 - 연홍미술관길 - 연홍미술관 - 좀바끝숲길 - 좀바끝둘레길 - 해안전망대 - 좀바끝 - 해모가지 - 해안둘레길 - 연홍 선착장

☞인근의 볼거리 : 소록도, 녹동 바다정원, 고흥 우주천문과학관, 팔영산, 능가사, 고흥우주발사전망대, 영남용바위, 거금도, 나로도 편백숲,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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