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사상 초유 '식물 야당 대표'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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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6 06:44  |  수정 2023-01-16 06:44  |  발행일 2023-01-16 제26면
개헌이슈 던진 새해 회견
기자 관심은 사법 리스크
당대표 개인 문제로 인해
정권견제 야당 기능 상실
與와 소통 안돼 국민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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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근 새해 기자회견에서 폭발력 강한 초대형 이슈를 마구 던졌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과 이를 위한 '민주당 자체 개헌안 3월 제출'부터가 휘발성 강한 의제였다. 여기에 '대선 결선 투표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를 도입하고 '감사원 국회 이관'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국민을 위해 '30조원 규모 긴급 민생계획 수립'도 정부에 요구했다. 검찰 조사를 막 받고 온 '범죄혐의 피의자'가 아닌 야당 대표의 제안이었다면 정치권이 후끈 달아올랐을 쟁점들이다. 특히 국회에서 개헌안을 발의(과반수)하고도 남는 의석을 가진 제1야당 대표가 어느 정권도 하지 못한 '87 체제 헌법'을 손보겠다고 했으니 기자회견장은 난리가 났어야 했다. 거창한 국가 개조 청사진을 밝힌 모두 발언에 이어진 일문일답에서 개헌의 구체적 방향, 국무총리 국회 추천의 방법, 30조원 재원 조달 방안 등 각론으로 이어지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은 모두 발언은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질문 내용을 사법 리스크로 몽땅 채우다시피 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로 12시간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개인적 소회는?" "계속 검찰이 소환할 텐데, 또 갈 건가?" "검찰 리스크 나올 때마다 (맞불로) '김건희 특검' 띄우는데, 어떤 의견인가?" "최측근 두 명이 뇌물 비리 혐의로 구속됐는데 유감 표명할 생각은 없는가?" "대선 때 공약한 대로 불체포 특권 내려놓을 의향은 없는가?"…. 이 대표의 궁색한 답변을 들으며 계속 생각한 건 이런 상황에선 우리 정치, 입법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거였다. 개헌 같은 거대 담론이 아니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3대(노동·교육·연금) 개혁 과제 추진,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극복 같은 난제들이 국회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입법 권력을 쥐고 있는 민주당은 당 대표 '방탄'에만 그 권력을 쓰고 있다.

민주당 강경파의 주장대로 이 대표에 대한 전방위 검찰 수사가 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워낙 많은 의혹이 쏟아지는 바람에 야당 대표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게 기자회견에서 그대로 확인된 건 별개 문제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 야당 대표 리스크가 정리되는 게 아니라 더 확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대장동 의혹의 키맨 김만배씨 재판이 다시 시작됐고,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당사자인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도 내일 송환된다. 야당 대표가 휘발성 짙은 이슈를 던져도 정국의 모든 현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은커녕 불발탄이 되는 상황의 연속이 예상된다. 제1야당의 정권 견제 기능은 사라지고 결과적으론 정치가, 국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국민 생활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토록 당당하다면 일단 대표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고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 다음 보란 듯이 정치판에 재등장하면 된다. 이 대표 기자회견 일문일답에선 이런 질문도 나왔다. "검찰 소환 이후 영수회담을 요구하는 건 정략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지적에 어떤 입장인가." 이 대표는 명확한 답변을 피했고, 대신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영수회담에 응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와 면담할 때 아니다." 민주당은 발끈했지만, 민생을 위한 여야의 소통을 막고 있는 건 이 대표인 건 분명하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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