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송의 환경과 사람] 고소한 맛의 두 얼굴…식용유 때문에 '지구의 허파' 아마존 우림이 죽어간다

  • 이기송 ISC농업발전연구소장
  • |
  • 입력 2023-01-20 08:01  |  수정 2023-01-20 08:06  |  발행일 2023-01-20 제36면

2023012001000449100018231

◆고소한 맛의 전성시대

매년 식용유 2억t생산에 4억㏊ 규모 땅 할애
3억3천만t 고기 생산엔 세계 농지의 75% 사용
소 목초지·사료 생산지로 변해버린 아마존 우림
동남아 열대우림도 대규모 팜유산업으로 훼손

기름 가열 시 트랜스지방 변질·발암물질 유발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미각세포 회복해야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성경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인간이 본래부터 타고난 유전적 본질에 대한 솔직한 통찰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먹는 즐거움'이 인생의 즐거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비록 거지나 먹을 게 부족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중요한 즐거움의 하나로서 인체의 설계단계에서부터 이미 설정된 정의인 것으로 보인다.

당대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에게 그의 인생에 최고의 소원이 있다면 '한 번만이라도 음식을 맛있게 먹어보는 즐거움'이라고 했다고 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것에도 입맛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인생 살아보니 어떠한 부나 성공이 주는 행복도 매일 누리는 '먹는 행복'과 견줄 바가 아니더라는 고백이다. 미각이 살아있고 식욕이 당긴다는 건 신이 우리 모두에게 준 큰 선물 중 하나라는 말이다.

이렇게 해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음식과 미각 사이의 미묘한 결합 관계는 '먹는 즐거움'을 고도로 발전시키는 결과도 가져왔지만 동시에 그 뒤에 가려진 그림자도 짙게 만들어 왔다. 맛의 변천사와 더불어 혀의 감각이 누리는 즐거움에 비례하여 혀를 제외한 몸 전체가 치러야 할 고통과 희생은 상대적으로 더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2023012001000449100018233

혀가 비교적 겸손했던 수십 세기 동안, 당시에는 그저 '염기'만 적절히 맞추어지면 모든 음식은 절정의 입맛을 충족해 주었다. 그래서 고대에는 소금의 가치가 너무나 중요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소금이 화폐로 통용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유럽인은 설탕이라는 그 '달콤한 맛'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먹고 마시는 무엇에든지 이것만 들어가면 꿀맛 같은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17세기부터 유럽인의 혀를 지배하기 시작한 설탕의 달콤한 맛은 금세기 초까지 수 세기 동안 세계보건기구와 의료계의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인의 입맛을 지배했다. '달콤한 마약'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류의 건강에 대한 폭군의 지위를 누려왔다. 그런데 달콤한 맛에 대한 지속적인 경고와 자극의 한계는 또 새롭게 등장한 매혹적인 맛의 자극에 이제 그 위대한 지배력의 지위를 물려주고 있는 듯하다.

그 차기의 맛의 지배자는 바로 '고소한 맛'이다. 이 맛은 짠맛과 단맛이라는 단순한 분자 구조적, 1차원적 맛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아주 미묘한 맛으로 사람의 미각을 사로잡는다.

문제는 그 맛이 주는 즐거움이 큰 만큼 그 맛이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도 짙다는 것이 우리를 진지하게 만든다.

2023012001000449100018232

◆고소한 고기

고소한 맛이 어떠한 맛인지 언어로 표현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그것이 기름이 고열로 가열될 때 발생하는 향내와 맛에 관련된 것이란 건 경험으로 공감할 수 있다. 참깨나 들깨 같은 식물성 기름뿐만 아니라 고기의 동물성 지방이 가열될 때에 나오는 바로 그러한 맛이기 때문이다. 헤어나기 힘들 정도로 사람의 입맛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고기 맛'의 실체도 엄밀하게 진상을 파헤쳐 보면 단지 '동물성 단백질'을 씹는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실은 동물성 기름이 가열될 때 나오는 '고소한 맛'의 매력 때문이다. 단백질 덩어리 닭가슴살이나 소허벅지살보다는 마블링 잘된 삼겹살이나 등심이 인기가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저명한 행동주의 철학자로 불리는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육식의 종말(Beyond Beef)'에서 예리한 통찰력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육식문화의 역사적 과정을 간파하고 있다.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무수한 야생동물을 집단 살해하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이 얻고자 한 것은 단지 '고기 단백질'에 대한 욕망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부개척이라는 이름으로 버펄로만 해도 400만마리 이상을 사냥하여 먹지도 않고 아예 대륙에서 멸종시켜 버렸다. 이유는 딱 하나다. 고소한 맛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초원을 누비며 운동하고 야생풀만 먹고 자란 비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날씬한 몸매를 가진 고급 단백질 유기농 버펄로 고기는 유럽인의 입맛에는 전혀 매력이 없었다.

그래서 버펄로가 차지했던 초원을 모두 빼앗아 소라고는 한 마리도 없던 신대륙에 유럽에서 들여온 소의 전용 목초지로 돌려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소에게도 풀만 먹고 자라는 초식동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고소한 맛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근육 사이에 지방이 촘촘히 잘 스며든, 한국으로 말하자면 1++A 최고등급 '지방질 쇠고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초식 겸 곡식 동물로 키우기를 원했다.

19세기 초 지방이 적은 쇠고기에서 지방이 많은 쇠고기로 영국인들의 기호가 바뀌지 않았다면 전 세계 대부분의 곡물이 인간을 위한 식량생산에서 동물을 위한 사료생산으로 옮겨가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제레미 리프킨은 이것을 '농경 역사상 최초로 소 생산과 곡식 생산을 새로운 공조 관계로 결합한' 끔찍한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세계적인 대단위 공장형 축산단지가 미국에서부터 발달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이리하여 지금 미국에서 생산되는 콩의 80% 이상이 가축 사료로, 곡물의 70%가 동물사료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냥 풀만 먹고 자란 고급 쇠고기 단백질을 어느 정도 즐기는 거로 만족했더라면, 현재 지구의 환경과 인류의 생명의 양(식량안보)과 질(건강보안)은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큰 아쉬움이 생긴다.

◆식용유의 이면

동물성 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이 많이 확인되면서 육식에 대한 매혹은 다소 거부할 수 있는 저항력이 생긴 사람들조차 '고소한 맛'이 주는 유쾌함을 거절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고소한 맛을 주는 육식의 대체재로서 식물성 기름이 20세기 말부터 각자 자기 고유의 명함을 내밀고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참기름, 들기름, 해바라기유, 콩기름, 카놀라유, 옥수수유, 팜유 등 종류도 많다. 동물식품이든 식물식품이든 심지어 채소 조각이라 해도 일단 불에 달궈진 식용유에 접촉하기만 하면 마법처럼 고소한 풍미를 극도로 올려주는 기가 막힌 식품으로 변해버리는 효과 때문이다.

이리하여 식용유 소비는 해마다 급속도로 증가했다. 1970년부터 지난 반세기 동안에 전 세계적으로 곡류 소비는 40% 감소했고, 육류소비는 약 3.4배로 증가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식용유 생산량은 1천100여만t에서 2억 5백여만t으로 18배 이상 증가했다. 급성장했다는 육류소비도 식용유 소비량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셈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은 1961년도부터 지난 반세기 동안에 탄수화물 소비는 40% 감소한 반면 고기 소비는 약 15배 증가했고 설탕 소비는 약 20배 크게 증가했다. 반면에 식용유 소비는 42배나 증가했다. 예외 없이 우리나라도 '고소한 마약'에 얼마나 흠뻑 빠져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그런데 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소금보다 설탕보다 고기보다 더욱 인체에 치명적인 해악을 주는 것이 다름 아닌 고소한 맛을 내주는 '가열된 기름'이라는 사실이다. 식용유가 가열될 때는 동물성 기름보다 더욱 고소한 맛을 내기는 하지만, 발연점이 낮은 식물성 기름은 독성물질도 더 잘 생긴다는 게 문제이다. 원래 식물성 기름은 불포화지방산이 많아서 동물성 기름보다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식물성 기름을 그대로 압착해서 고소한 맛도 없이 먹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식용유는 추출과정에서 가열하거나 조리과정에서 고열로 가열된다. 그래야 고소한 맛을 즐길 수가 있는데 문제는 가열될 때 트랜스지방으로 변질하고 또한 고열로 튀기거나 볶을 때에는 아크릴아마이드·알데히드·벤조피렌 같은 발암물질이 생긴다는 점이다.

◆고소함의 환경적 기회비용

매년 식물성 고소함을 위한 2억t이 넘는 식용유가 생산되는 동안 4억㏊가 넘는 땅이 할애된다. 매년 동물성 고소함을 위한 3억3천만t이 넘는 고기 생산을 위하여 전 세계 농경지의 4분의 3 이상이 사용된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우림은 소고기 생산을 위한 목초지와 사료 생산지로 파괴되었고 동남아시아 열대우림은 대규모 팜유 생산을 위하여 크게 훼손되었다. 모두가 그놈의 고소한 맛 때문이었다.

그동안 고소한 맛에 취해서 그것 때문에 지구의 한쪽 구석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내 몸의 어느 구석이 얼마나 망가지는지도 모르고 달려왔다. 이제 좀 더 지혜로운 미식가가 될 필요가 있겠다. '먹는 즐거움'을 누리되 끊임없이 미각세포를 더 자극하는 맛을 좇을 것이 아니라 원래의 살아있는 나의 입맛을 거꾸로 회복하는 일이다. 카네기의 소원처럼 말이다.

건강한 미각세포가 회복되면 지나치게 짠 것도, 단 것도, 매운 것도, 고소한 것도 오히려 거부반응이 생겨난다. 천연의 식품에 약간의 조미만을 더해도 꿀맛 같은 식도락을 충분히 누릴 수가 있게 된다. 내 몸부터 살리면서 지구환경도 자연스럽게 살릴 수가 있게 된다. '고소한 맛'이 식탁을 지배함으로 말미암는 폐해의 심각성을 정직하게 직시한다면 구워진 오일의 야릇한 향내에 속임 당해 계속 코를 들이밀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끝>

<ISC농업발전연구소장·경제학 박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