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질 대로 망가진 가장 불편한 인물화...화가로 변신한 이춘호 영남일보 기자의 첫 개인전 '페이스토리'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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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30  |  수정 2023-01-29 17:09  |  발행일 2023-01-30 제21면
30일부터 2월17일까지 대구은행 본점 별관 1층 DGB갤러리서 열려
망가질 대로 망가진 가장 불편한 인물화...화가로 변신한 이춘호 영남일보 기자의 첫 개인전 페이스토리
이춘호 'Neo 비너스의 추억'
망가질 대로 망가진 가장 불편한 인물화...화가로 변신한 이춘호 영남일보 기자의 첫 개인전 페이스토리
이춘호 '뭉크의 추억1'

'얼굴(FACE)의 역사(HISTORY)'가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일반 드로잉이나 초상화와는 다른 인물 표정을 추구한, 가장 불편한 인물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무섭고 기괴한 표정, 가장 절망에 달한 표정, 가장 근본적이고 야수적인 표정의 역사가 펄떡펄떡 숨 쉰다.

현직 영남일보 기자인 이춘호 작가의 제1회 개인전 '페이스토리(FACETORY·얼굴의 연대기)'전(展)이 30일부터 2월17일까지 대구은행 본점 별관 1층 DGB갤러리에서 열린다. 오프닝 행사는 30일 오후 5시에 진행된다.

작가는 코로나 팬데믹 그 긴 터널 속, 희망보다 절망이 되레 더 희망스러운 것 같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얼굴이 삶의 구간을 다 지나고 나면 죽음의 표정으로 쓰러집니다. 그 위에 영정(影幀)과 명정(銘旌)이 만장(輓章)처럼 포개져요. 우리는 언젠가 이승과 결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결별의 표정을 절망스럽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있는 듯 없는 듯한 팬데믹 초상화라고 할 수 있는, 얼굴(FACE)과 역사(HISTORY)를 합친 '페이스토리(FACETORY)'라는 신조어를 제시한다. 전시에서는 신개념 인물화와 함께, 스케치북에 마음대로 그린 드로잉, 5합 한지와 합판에 그린 120호 짜리 꼭두변상도 1, 2를 선보인다.

그는 "죽음 같은 삶, 절망 같은 희망, 이승 같은 저승, 울음 같은 웃음, 그런 중첩되고 대립적인 감정을 그림에 담으려고 했다"면서 "'페이스토리'는 있는 자보다는 평생 한숨으로 일관했던 정말 비극적이고 비애스러운 존재, 코로나 팬데믹에 희생된 숱한 영령을 위한 내 나름의 '진혼화(鎭魂畵)'라고 자부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페이스토리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금세기 표정의 연대기이자, 불편한 이성의 끝 그걸 자맥질해 본 여정이다.

'자타 공인 음식전문기자'이면서 동요 가수로도 활동하는 그가 이번엔 화가로 변신한다니 놀라는 이들이 많다.
이에 작가는 "아버지는 평생 개인전 한 번 하지 않은 재야 서예가였다. 몇 년 전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분을 위해 '초록경'이란 철학 에세이집, 그리고 재차 그분이 사용하던 문방사우를 갖고 서예가의 길로 나섰다. 현대서예로의 길을 더듬어 가다가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지난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발작적으로 현대미술과 조우하게 됐다. 마치 번개를 맞은 듯, 미친 듯 수 백 점을 그려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잘 설계되고 잘 정제된 그림은 외면했다고 했다.

밑그림을 거부했고 가급적 붓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린다기보다 조각하듯 긁고 깎아낼 때가 많았단다. 손가락과 손바닥, 칼과 끌, 정, 못, 철사, 돌멩이, 사포, 나뭇가지, 구겨진 종이 등으로 원하는 질감을 표현했고, 먹, 락카, 몰타르, 돌가루, 머리카락, 모래, 먼지, 녹인 비닐, 아크릴, 한지, 검정 등도 섞었다.

또한 대다수 작업은 캔버스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용제로 마음대로 녹일 수 있고 거칠거칠하고 우툴두툴한 마티에르를 연출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았는데 그게 '보드롱'이었다고 했다. 때로는 토치로 녹일 수 있고 마음대로 칼질도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그의 그림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준 화가는 독일 후기 추상표현주의 대가인 안젤름 키퍼와 게오로그 바셀리츠, 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 중 한 명인 장 뒤 뷔페, 바스키아, 지역의 경우 일사 석용진, 김길후, 권기철, 김창태 등이라고 했다.

작가는 "그림이 아주 어둡다. 일부러 그렇게 그렸다. 아트페어에 등장하는 그냥 대책 없이 말간 그림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세상의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결혼을 포기한 청년 백수, 자살을 꿈꾸거나 도피 중인 신용불량자, 고독에 방치된 홀몸 어르신, 노숙자, 호스피스 병동의 말기 암 환우, 우울증 환자 등과 공유되는 그림이었으면 싶다"면서 "아직 전시하지 않은 작품이 얼추 150여 점 있다. 앞으로 3번 정도 대구에서 개인전을 하고 4회 개인전은 서울에서 하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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