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의 세계식문화산책] 이라크 요리, 대가족 문화 속 컬러 조화 중시…귀한 손님에게 양고기·숯불구이 잉어 대접

  • 이연실(체리) 로컬 AI블루테크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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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03 08:13  |  수정 2023-02-03 08:14  |  발행일 2023-02-03 제37면
참깨 등으로 만든 국민소스 홈무스
소주·맥주·빵 탄생…세계로 전파
요리 잘하는 여성이 최고의 신붓감
실크로드 교류…韓음식문화와 뿌리
한국 찾은 이라크인에 깍두기 인기
단맛 선호…홍차에 설탕 가득 넣기도
흰쌀밥에 견과류·향신료 많이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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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무스와 주된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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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케밥

이라크는 내가 13세 때부터 관심을 가진 나라이다. '열려라 참깨!' 주문이 나오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눈이 커졌다. '그 나라에도 우리나라와 똑같은 참깨가 있나?' 하며 궁금해했다. 이라크 사람들을 실제 겪어보니 '홈무스' 등 참깨를 활용한 요리도 많다.

홈무스는 병아리콩, 참깨, 올리브유, 마늘을 갈아서 빵을 찍어 먹는 소스이다. 아랍 사람들은 병아리콩을 대단히 즐긴다. 콩이 일반 콩처럼 동그랗게 생긴 게 아니라 병아리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 몇 년 전부터 이 콩이 한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물에 불렸다가 삶아서 먹어도 맛있다. 다이어트식으로도 좋아 인기를 얻었다.

지구촌을 두루 다니며 느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것이 외국에 있는 게 아니라 외국에 있는 게 한국에도 있는 것이었다. 한반도는 겨울이 길고 사계절이 있다. 사실 모든 곡물과 과일, 채소의 원산지가 대부분 아프리카나 중동 또는 인도, 동남아시아이다. 한국이 원산지인 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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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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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향신료


◆이라크 바그다드

내 버킷 리스트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이라크 방문. 내가 그 수메르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나라에 꼭 가보고 싶은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인이 대부분 즐기는 소주나 맥주, 빵이 모두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탄생했다. 그 이후 전 세계에 퍼졌고 지구촌에서 사랑을 받는다. 중동 음식은 알면 알수록 매료된다.

오늘날 중동의 핵심은 6개 아랍 산유국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결성한 지역협력기구인 '걸프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에 속하는 나라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UAE·쿠웨이트·바레인·오만·카타르이다. 석유나 천연가스 생산 덕분에 경제적으로 잘 먹고 풍요롭게 살지만 움직이지 않아 비만이 심하다. 이라크는 그 6개 나라보다 석유가 더 나지만 미국 등이 빨대 노릇을 한다.

사람들은 대개 부자 나라로 여겨 비즈니스의 초점을 그들에게 맞춘다. 그러나 진짜 중동의 핵심은 이라크의 바그다드였다. 바빌론 왕국, 그리스나 페르시아의 영향도 받았다. 아랍의 요리는 튀르키예(터키) 요리 영향도 받았다. 과거 오스만투르크에 속했으니 모든 음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바그다드는 압바스 왕조 당시 인구 100만명이 넘는 세계의 중심지였다. 오늘날의 뉴욕과 같았다. 다국적 음식의 천국이었으리라. 육상 실크로드나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한국 음식 문화와 뿌리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신기하게도 우리와 어린이들의 놀이, 예를 들면 굴렁쇠까지 비슷한 게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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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식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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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콩 수프와 음식

◆소주·맥주의 고향

수메르 제국 시절 맥주가 탄생하였다. '파리다라거비어'가 있다. '파리다'는 아랍 남자들의 이름에 많은데 누군가 자기 이름 파리다를 붙인 것 같다. 소주의 원형이랄까? 이라크에는 '아락'이라는 전통 소주가 있다. 몽골제국이 이라크를 점령했을 때, 바그다드는 초토화되었다. 그 비극의 시대에 소주를 본 몽골 병사들이 소주 문화를 몽골로 전수했다.

우리도 원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 안동 소주나 마산 몽고 간장 문화가 태동했다. 소주나 맥주를 탄생시킨 이라크는 오늘날 이슬람 국가로서 술을 마시는 이가 많지 않다. 대부분 차를 마신다. 그것도 홍차 말린 것에다 카다멈(향신료)을 넣어 진하게 끓여 마신다. 한국인은 처음에 적응이 안 된다. 그러나 여러 번 마시다 보면 그 맛에 길든다.

이라크 음식의 디저트는 상당히 달다. 당도가 인도의 디저트 라스굴라 수준이다. 홍차도 너무 달게 마신다. 이라크의 설탕 소비량이 우리와는 비교불가. 우리가 보통 500g짜리 설탕 한 봉지 살 때, 그들은 업소용 같은 20㎏ 포대로 사는 걸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홍차에 설탕을 한국 수저로 두 수저나 넣기도 한다. 오랜 전쟁 등으로 삶이 너무도 씁쓸해서 입맛이라도 단것을 선호하는 것일까?

이라크는 대체로 빵 문화이다. 화덕에 굽는 건 전통적인 방식이므로 밖에서 불을 피운다. 남부 지역은 쌀도 생산된다. 그래서 캅사 요리가 발달해 있다. 중동식 쌀밥이다. 그들은 견과류와 향신료를 많이 활용한다. 이라크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이 흰쌀밥만 있는 한국식 밥을 보면 안쓰러워한다. 얼마나 어렵게 살았으면 견과류 등 넣을 게 없나 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화덕에 빵을 굽는다. 그러나 이라크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중동식 전통 화덕이 없기 때문에 가스레인지에 큼지막한 프라이팬을 뒤집어서 달군다. 달구어지면 그날 한꺼번에 빵을 50개쯤 굽는다. 한국인들은 일명 '걸레빵'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중동 건설 당시 한국인들이 처음 본 '쿠브스' 빵이 마치 마른걸레처럼 보여서 그렇게 불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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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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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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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구이(마스코프)


◆화려한 중동음식

중동 음식의 특징은 화려하다. 데커레이션이 발달해 있다. 컬러의 조화를 중시한다. 그들은 대가족이므로 한 번 사촌들이라도 모일라치면 100명분쯤 음식을 준비한다. 같이 모여 앉아서 식사를 한다. 집안 행사나 모임 때 남녀가 상차림을 별도로 하고 따로 앉는다. 나는 그들이 사촌이나 팔촌 간에 남녀가 커서야 서로 얼굴을 아는 게 신기했다. 어려서부터 '남녀칠세부동석'이어서 그렇다.

대가족 문화라 일단 숫자가 엄청 많다. 역사적으로 중동 지역 최고의 신붓감은 미모도 학벌도 성격도 아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이가 최고 인기 있는 신부이고 결혼해서도 남편을 행복하게 한다. 그들은 거의 매주 금요일 모스크에 가서 기도한 뒤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거나 정을 나눈다. 대략 수십 명은 기본이다.

요리 재료인 가지, 피망, 오이, 레몬, 콩, 포도잎 등을 매우 색다르게 활용한다. 중동 지방의 가지 요리가 아주 맛있다. 양고기를 최고로 친다. 손님이 오면 양을 한 마리 잡는다. 왕실에서는 낙타구이를 하기도 한다. 낙타 스테이크가 아주 맛있다고 한다. 향신료 활용을 잘하고 철저히 할랄 요리만 즐긴다.

한국 최초의 이라크인이 운영한 레스토랑은 이태원에 있는 '두바이'였다. 이라크 전쟁을 피해 한국에 온 청년이 운영했다. 그 뒤 한국인 남자와 이라크 여성 간 최초의 결혼 커플인 지인이 운영했다. 현대건설 소속 한국인이 이라크 엔지니어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 가족이다. 이라크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활발한 것도 의외였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축도 이라크 여성 건축가가 설계했다. 그녀는 세계적인 건축가인데 애석하게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한국에 이라크 사람들이 오면 할랄만 골라 한식을 대접하고 동대문으로 안내하곤 했다. "당신네 나라의 위대한 건축가가 남긴 작품"이라고 하면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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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실(체리) 로컬 AI블루테크 크리에이터

◆깍두기 좋아하는 사람들

몇 년 전 이라크 시청의 공무원들이 한국에 연수를 왔었다. 일행 중 1명이 나의 이라크 장군 친구 사위였다. 한국에 국방부 연수를 왔다가 나와 그 가족이 모두 특별히 친해졌는데 선물도 여러 가지 보내왔다. 내가 한식을 대접하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한식인 데다 식자재도 양념도 이라크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이라크 사람들은 한국의 김치 중에서 총각김치나 깍두기를 좋아했다. 물김치도 잘 먹던데 속이 개운한 느낌이 들어서 그럴 것이다. 이라크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흐른다. 그래서 물고기 중 특히 잉어구이를 즐긴다. 야외에서 숯불에 구워 화려하게 장식한다. '마스코프'라 한다. 고급 생선요리라서 귀빈에게 대접한다.

대추야자 최고의 생산지였던 이라크, 이란 이라크전 이후 옛이야기가 되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이란의 군인들이 숨어들어 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 대추야자 나무 제거 작전에 들어갔다. 8년간 전쟁을 치른 두 나라, 민족도 언어도 다르지만 할랄 음식을 먹는 공통점이 있다.

오늘날 이란과 이라크는 가까이 지낸다. 먹는 게 잘 통하니 문화도 쉽게 교류하는 힘이 있다. 지구촌 모든 음식은 문화의 뿌리이다. 한 번 길들면 천년도 가는 게 식문화이다. 미각은 놀라운 중독성이 있다. 내가 싱가포르의 '락사'나 '칠리크랩'을 그리워하듯 한국에 다녀간 외국인들이 김치나 된장찌개를 먹고 싶어 하는 까닭이다. 음식 문화도 살아서 움직인다.

<로컬 AI블루테크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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