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전북 순창 용궐산 하늘길…용의 등에 올라 승천하듯 섬진강 절경 위를 굽이치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3-02-10  |  수정 2023-02-10 08:32  |  발행일 2023-02-10 제16면
깎아지른 화강암 절벽 540m 잔도 펼쳐져

유장한 물길 풍광 벗 삼아 짜릿한 트레킹

산아래 현수교 일대는 최고 경치 '장군목'

전설 깃든 '요강바위' 한때 도난당하기도

[주말&여행] 전북 순창 용궐산 하늘길…용의 등에 올라 승천하듯 섬진강 절경 위를 굽이치다
용궐산 대슬래브에 놓인 잔도. 화강암 암벽을 지그재그로 오르는 약 540m의 덱 로드로 '용궐산 하늘길'이라 부른다. 섬진강은 용궐산 아래를 적시고 남쪽 적성면으로 흘러간다.

도르르르 멀리 달아나는 종이 두루마리처럼 난감하게 좁고 깨끗한 길이다. 길은 강과 산 사이에 드러누워 굴렁굴렁 순진하기 그지없이 굴러가는데, 나는 심장이 쪼그라진 채로 사방을 살필 정신이 없다.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어떡하나, 교행을 위한 공간은 야속하리만치 찔끔이다. 길가 강변으로 내려선 자리에는 당산나무 한 그루가 늠름하다. 길은 당산나무 줄기의 굵은 덩치만큼 오래되었을 것이고 이 깨끗한 포장은 근래의 일이리라. 크고 작은 바위들이 쏟아져 내린 섬진강은 반짝반짝 윤슬이 유난해서 가늘게 뜬 눈 앞이 휘황하다. 끔뻑끔뻑 눈동자를 촉촉이 적셔 저 앞을 내다보면, 길과 물빛이 달려 만나는 소실점으로부터 불쑥 솟아 대슬래브의 허연 가슴을 드러내놓고 있는 산을 마주한다. 순창의 용궐산(龍闕山)이다.

[주말&여행] 전북 순창 용궐산 하늘길…용의 등에 올라 승천하듯 섬진강 절경 위를 굽이치다
하늘길에 오르려면 먼저 가파른 돌계단 길을 40분쯤 올라야 한다.

◆용궐산 하늘길

전북 진안에서 출발한 섬진강 물줄기가 임실의 옥정호에 모였다가 순창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용궐산이 솟아 있다. 높이는 해발 647m로 하늘에서 보면 평면이 대략 마름모꼴인데 북, 서, 남으로 이어지는 두 변이 섬진강에 닿아 있다. 원래는 용골산(龍骨山)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용의 뼈다귀'라는 의미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꽤나 오랫동안 강력하게 개명 요구를 했던 모양이다. 2009년, 정부는 중앙지명위원회를 열어 '용골'을 '용궐'로 바꾸었다. '용궐(龍闕)'은 '용이 거처하는 집'이라는 의미다.

용궐산의 남서 가슴께에 커다란 암벽이 훤히 드러나 있다. 저처럼 평평하고 매끄럽고 넓은 암벽을 등산 용어로 슬래브(slab)라 한다. 등산꾼은 대개 '슬랩'이라 하고, 슬래브가 크면 '대슬랩'이라고 이야기하더라.

2020년 4월에 용궐산 대슬래브에 잔도가 놓였다. 매끈한 화강암 암벽을 지그재그로 오르는 약 540m의 덱 로드로 '용궐산 하늘길'이라 부른다. 하늘길에 오르려면 먼저 가파른 돌계단 길을 40분쯤 올라야 한다. 하늘길을 놓으면서 만든 기존의 돌계단 길은 지난해 가을 산사태로 폐쇄되어 있고, 현재는 그와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또 다른 돌계단 길이 마련되어 있다. 아주 야성적인 돌계단이어서 돌 하나하나와 얼굴 맞대고 몇 번이나 인사를 나누었는지 모르겠다.

대슬래브와 함께 하늘길이 시작된다. 첫 계단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 쓰여 있다. '발아래를 잘 보라'는 말이다. 자신을 돌아보라는 속뜻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정말 발아래를 잘 살펴야 한다. 몇 걸음 오르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마주한다. 세상에 가득 찬 넓고 큰 기운에 대해 '잡다한 일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마음'이라 설명해 두었다. 그렇게 이따금 계단은 '산광수색(山光水色·하늘빛, 물의 색, 경치가 좋다)'이라거나 '상선약수(上善若水·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등의 옛 말씀을 또각또각 전해준다.

[주말&여행] 전북 순창 용궐산 하늘길…용의 등에 올라 승천하듯 섬진강 절경 위를 굽이치다
암벽에는 계산무진, 제일강산 등이 새겨져 있다. 애초 '용궐산 고사성어길' 조성을 위해 더 많은 각자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자연훼손이라는 비판에 따라 중단되었다.

대슬래브를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하늘길에서는 몇몇 각자를 볼 수 있다. '계산무진(谿山無盡)'은 '시냇물도 산도 다함이 없다'는 뜻으로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은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한석봉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제일강산(第一江山)'은 안중근 의사의 글씨다. 약지 한 마디가 없는 그의 손바닥 도장도 새겨져 있다. 그 손에 내 손을 대어본다. 날이 따스해 손도 따스하다.

시야가 한없이 열린다. 유장하게 흐르는 섬진강의 모습에 가슴이 저릿하다. "여기 델꼬 와 줘서 고맙데이." 스쳐 지나는 장년 그룹의 대화가 귀에 쏙 들어온다. 마주 오는 아주머니의 손에서 달랑거리는 사과 봉지에 마른침을 삼킨다. 말끔한 차림의 청년이 서 있던 하늘길 전망대에 시원한 로션 향이 떠돈다. 전망대를 지나면 잠시 후 하늘길이 끝나고 용궐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여기부터 정상까지는 약 1.3㎞ 정도이고, 시종일관 오르막에 바위 많은 험한 길도 있다. 지금 하늘길은 연장공사 중이다. 연장거리는 469m로 오는 8월8일 준공 예정이라 한다. 다시 전망대에서 세상을 본다. 첩첩 산은 깊고 그윽하다. 섬진강은 북쪽의 임실 덕치면에서 흘러와 발아래를 적시고 남쪽의 순창 적성면 쪽으로 흘러간다. 북쪽의 물굽이 아래로 빨간 현수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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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목유원지. 가장 앞의 바위가 요강바위다. 1993년 도난당했다가 1년6개월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던 사건의 주인공이다.

◆장군목 유원지

현수교 일대는 장군목 유원지다. 주변 산세가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의 목에 해당한다고 하여 장군목이라 하고, 장구의 잘록한 허리와 닮았다고 장구목이라고도 부른다. 장군목 유원지는 섬진강 5백리 가운데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으로 꼽힌다. 경치에 반한 사람들이 들락거렸고 그러자 '가든'이니 '민박'이니 하는 것들이 생겨나 저절로 유원지가 되었다고 한다.

여러 고을의 섬진강을 보았지만 이곳의 강돌은 특히 웅장하고 원시적으로 보인다. 하늘을 담은 돌개구멍도 하 많고 다리 뻗고 누울 너럭바위도 넉넉하다. 수만 년 굽이치며 흘러온 강물이 빚어놓은 이 기이하고 기묘한 돌들은 3㎞에 걸쳐 흩어져 있다. 이곳에서 영화 '아름다운 시절'과 '복수는 나의 것'을 촬영했다고 한다.

그 기묘한 바위 가운데 이름난 것이 '요강바위'다. 높이 2m, 폭 3m, 무게 15t의 바위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큰 구멍이 나 있다. 이것 역시 돌개구멍이다. 구멍은 움푹 파인 수준을 넘어 아예 바닥까지 뚫려 있다. 이 구멍에 아이가 없는 여인이 들어가 치성을 드리거나 바위에 걸터앉아 소변을 보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다. 6·25 전쟁 때는 마을 주민이 요강바위 안에 몸을 숨겨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일설에는 빨치산 5명이 이곳에 몸을 숨겨서 살아남았다고도 하는데, 사실 그 정도로 크지는 않다. 한때 요강바위가 수억 원을 호가한다는 소문이 난 적이 있다. 1993년 이곳으로 이사 온 한 외지인이 마을 주민 모두를 단체관광 보낸 뒤 중장비를 끌고 와 바위를 실어내 갔다고 한다. 다행히 도둑은 오래지 않아 붙잡혔고 요강바위는 1년 반 만에 이곳에 돌아왔다.

너럭바위에 앉아 요강바위를 본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다. 뒤돌아 앉으면 용궐산 대슬래브가 보인다. 하늘길이 절리 같고 수많은 말씀은 마음에만 남았다. 길가 찻집에서 추억의 가요가 흘러나오고 요강바위를 둘러싼 여인들의 웃음소리 높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순창IC로 나간다. 순창IC교차로에서 우회전해 직진, 가남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직진, 제일고삼거리에서 우회전해 24번 국도를 타고 직진한다. 지복사거리에서 좌회전해 21번국도 인계, 적성 방향, 운림사거리에서 우회전해 장수, 동계 방향으로 간다. 내월삼거리에서 왼편 21번 국도 장수, 동계 쪽으로 가다 내룡교차로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잠시 후 좁은 강변길이 시작된다. 길 따라 들어가면 용궐산 하늘길 산행 시점인 치유의 숲 주차장이 넓게 자리한다. 주차비는 무료다. 길 따라 약 1.7㎞ 더 들어가면 장군목유원지다. 요강바위 근처 도로에 작은 주차 공간이 있다. 하늘길 왕복은 약 2시간 정도. 덱길 끝에서 정상으로 오른 후 장군목유원지로 내려오는 등산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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