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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논설실장) |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전기차가 더 많았다고 한다. 다만 화석연료를 장착한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기동력이 떨어졌다. 세계대전의 전장에서는 낮은 순발력으로 전투력이 상실됐다. 특히 배터리가 문제였다. 굉장히 작은 물체속에 에너지를 저장해야 하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할까. 작금의 난방비 폭탄도 비록 정치적 배경이 있지만, 그 법칙의 한계에 우리가 갇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의료 담당 기자일 때 대학병원 교수와 대화를 나눴다. 그 의사는 무슨 시약을 놓고 이건 암 치료에서 정말 혁신적이라 했다. 완치를 말하느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다는 응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효과는 뭐라고 다시 물었다. '환자의 생활 상태를 많이 개선한다. 2~3개월 정도 수명이 연장되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거치며 우리는 자신했던 현대의학에 좌절을 느꼈다. 확실한 치료제도 없고 그냥 마스크를 쓰라고 한다. 인간과 함께 살고 있다는 바이러스는 외계인이다는 푸념처럼 인간을 주기적으로 압박한다. 암, 당뇨, 알츠하이머, 고혈압은 생물학적 노화로 보이는데, 우리는 여기서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혹자는 기다려 보라고 한다. 언젠가 뇌에 칩을 꼽고 메타버스로 여행과 섹스를 하며, 영생 불멸한다고.
TV인지 신문인지 잊어버렸지만, 이런 주장에 접했다. 작금의 인류가 언젠가 멸망하고, 지구가 태양계를 다시 수억년을 돌고 돌아 새로운 인류가 태어나면 현재의 지구를 어떻게 규정지을까란 질문인데, 답은 호모사피엔스 인간의 시대가 아니라 '닭의 시대'란 농담식 추론이다. 우리 인간이 공룡시대를 규정한 방식에 따른 것인데,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화석을 남기는 생명체는 인간이 하루에 수억 마리씩 먹어치워 뼈가 쌓이는 닭이기 때문이란 논리다. 하긴 1초에 29km를 달리는(지구 공전속도) 태양계 지구 위에 잠시 몸을 실은 인류가 처한 우주적 환경을 생각하면 허망하지만 그럴듯해 보인다.
새로운 AI채봇이 나왔다며 지구촌이 떠들썩하다. 무엇이든 물으면 답하고 해결할 시대가 도래했다고 환호한다. 회사 보고서도, 기말고사 리포트도, 판결문도, 주식투자도 알아서 한다나. 마침내 AI가 시인의 시를 대체한다고. 그러면 시가 없는 인간은 여전히 인간적일까. 평생 시를 즐겨 썼다는 공학도 니콜라 테슬라의 생각이 갑자기 궁금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류는 과연 진화, 아니 진보하고 있는가. 수만명이 죽고 묻혀버렸다는 튀르키에의 지진 앞에 인간은 여전히 무력하다. 우주의 티끗 지구가 종종 앓는 지진이란 물리적 현상에 불과하지만, AI도 자율주행차도 건물더미속에 갇힌 가냘픈 소녀를 바로 꺼내주지는 못한다. 인간은 여전히 약하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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