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人사이드] '금니사경 국내 최고 기록' 대구 이순자 명인 "800m 고려장지에 56만자 금니사경…20년간 땀과 혼 녹여낸 역작"

  • 김수영,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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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15  |  수정 2023-11-29 15:23  |  발행일 2023-02-15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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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에 걸쳐 완성한 56만 글자의 '묘법연화경' 금니사경 작품으로 KRI 한국기록원 공식 최고기록 인증을 받은 이순자 명인은 사경을 하면서 비우는 마음을 배우게 됐다며 올해 유럽 진출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그의 긴 사경 제작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묘법연화경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지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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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자 명인(불교문화)이 20년에 걸쳐 완성한 56만 글자의 '묘법연화경' 금니사경작.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올해 초 우연히 한 신문을 보다가 서울에서 열린 '이순자 금니사경 KRI 한국기록원 공식 최고기록 인증서 수여식' 관련 기사를 보고는 '도대체 금으로 어떻게 사경을 해서 한국기록원 최고기록에 도전한다는 말이지' 하며 궁금해했다. 박물관 등에서만 보던 금니사경으로 이런 도전을 한다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그 주인공이 대구사람인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궁금증과 함께 귀하디귀한 금으로 일필휘지해야 하는 금니사경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작동했다. 수소문 끝에 금니사경의 명인인 이순자(67) 작가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사경은 고려시대 때 전성기를 맞았으나 조선 숭유억불정책 영향으로 전통의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이 작가는 집념과 열정으로 사경의 맥을 살리는 데 온 힘을 다했고 고려 천년의 혼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천년 전의 고려사경 제작방식으로 필사했으며 고려장지 위에 이를 재현했다. 그의 작품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려때 방식으로 법화경 필사
맥 끊겼던 고려장지 위에 재현
사경은 왕족과 귀족들의 문화
종교적 의미 넘어선 종합예술
올해 유럽 전시회 진출도 추진

남편 기운 북돋우려 사경 시작
작업하며 더 큰 환희·발심 경험
금강경·아미타경 등 작품 다수
16개국 韓대사관에도 소장돼"


▶'금니사경'이란.

"한마디로 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 가루, 즉 금니(金泥)로 불교경전을 베끼는 일이나 그런 경전을 의미한다. 금니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때 사용하며, 어두운 바탕의 종이에 사용하면 일반 먹과는 또 다른 독특한 효과를 낸다. 선조는 후세에 전하거나 축복을 받기 위해 경전을 필사했으며 사경을 수행의 한 방법으로도 활용했다. 우리나라 사경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때 전성기를 누렸다."

▶사경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됐다니 놀랍다.

"사경은 고려시대에 번창한 불교와 함께 전성기를 맞았다. 왕족과 귀족들이 앞다퉈 사경을 했다. 하루 일 중 사경하는 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도 했다. 고려 사경은 종교적인 것을 넘어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서예와 회화, 공예적 요소가 포함된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다. 사경이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한 한 방편이었지만 예술성과 수행으로서의 중요한 가치가 오늘날까지 그 맥이 이어지는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사경을 하게 됐나.

"어릴 적이었다. 오빠가 베트남전에 파병 참전하자 아버지께서 전역해 귀국할 때까지 3년 가까이 매일 새벽에 개울에 나가 세수하고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기도드리는 모습을 봤다.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불교에 빠져들었다. 사경은 결혼 후 남편이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할 때 처음 하게 됐다. 직장생활을 하던 남편이 사업가로 탈바꿈하는 게 쉽진 않았다. 남편의 기운을 북돋워 주려고 기도와 함께 사경을 했다."

▶사경공덕을 강조했는데.

"불교에서는 본래 세상에 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또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때 공덕이 된다고 가르친다. 사경은 공덕을 쌓는 신행이다. 한참 사경에 빠졌을 때는 2~3시간만 자고 했다. 지금도 가급적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밥 먹을 때와 잘 때 외에는 사경을 한다. 늘 비우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

▶사경이 여러 변화를 일으켰다고 했는데.

"사업하는 남편의 마음을 좀 더 편하게 해주려고 시작했는데 내 마음부터 편해졌다. 사경 수행을 통한 내 마음의 평온이 남편에게도 그대로 전해진 것 같다. 집안 전체가 그 전보다 훨씬 따뜻하고 웃음이 많아졌다. 믿기 어렵겠지만 몸도 건강해졌다. 특별한 병이 없는데도 온몸이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경을 한 뒤 어느 순간부터 그런 현상이 잦아들었다."

▶금니사경 작가로 특히 유명하다. 금니사경을 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남편 때문에 집에서 기도사경을 하다가 한 박물관에서 금니사경을 봤을 때 느낀 환희심이 금니사경으로 이끌었다. 금니를 사용한 경전을 장엄경이라 하는데 일반 작품과 달리 금니사경은 회화성이 강한 입체적 작품이라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 더 공을 들이는 과정이다. 더 큰 환희심과 발심을 일으키는 경험을 하게 됐다."

▶금니사경을 하는 데 여러 도움이 있었다고 했다.

"금니사경에는 세 가지 요건이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첫째는 금이라 재료가 워낙 고가이고 글씨가 세필이라 감정 기복이 없어야 해 가족의 도움이 절실하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모든 생활을 절제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잔소리 한번 없이 재료를 사도록 도와준 남편, 평온한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준 가족에게 감사하다. 성파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금니사경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옻칠한 고려장지였는데 성파 스님이 명맥이 끊긴 고려장지를 되살려내셨다. 그 귀한 것을 아낌없이 주셨다. 이런 귀한 인연이 금니사경 제작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금니사경을 고려장지에 한 이유가 있나.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일반 한지에 사경을 했다. 하지만 사경에 깊이 빠지다 보니 사경의 역사, 재료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 그동안 일본종이에 사경을 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를 큰 돌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박물관에 잘 보관된 금니사경처럼 전통 금니사경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고려장지가 필요했다. 옻은 금과 궁합이 잘 맞는 데다 금의 색감을 더욱 잘 살려준다. 옻은 한지에 방수벽을 형성해 금니가 종이에 흡수되는 것을 막아주고 한지의 생명도 더 길게 한다."

▶사경한 작품은 어떤 게 있나.

"국내 최대,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법화경 금니사경을 비롯해 금강경, 아미타경, 보현행원품, 반야심경, 변상도, 길상도 등이 있다. 초기작인 법화경 금니사경은 대구 대견사와 경기 천태종 대광사에 봉안되어 있다. 동화사 약수암에서는 금강경, 충남 고왕암은 아미타경을 봉안해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유엔 16개국 한국주재 각국 대사관에도 작품이 두루 소장돼 있다."

▶국내 사경 명인 1호 인정에 이어 한국기록원 최고 기록에 도전해 성공했다.

"2016년 한국예술인총연합회에서 사경명인 1호로 인정받았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간 폭 33㎝, 총길이 800m 이상의 고려장지 위에 금니로 묘법연화경을 필사했다. 이 작품은 1세트에 7권이고 총 8세트로 구성돼 있다. 총글자 수만 56만자에 달하는 역작이다. 오랜 시간 땀과 혼이 녹아있는 이 작품이 KRI 한국기록원 공식 최고기록 인증을 받아 감격스럽다."

▶앞으로의 계획은.

"2019년 중국 국립섬서성박물관에서 외국작가로는 처음 초대돼 전시를 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일본, 중국 전시는 물론 유럽으로 전시를 넓혀나가고 싶다. 유럽 진출은 조만간 결정이 날 듯하다. 내친김에 미국 WRC세계기록위원회 등 해외 기록인증업체에도 인증 심의를 요청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8세트인 법화경을 10세트까지 채우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욕심내지 않는 부처님의 일하는 사람으로 금니사경을 재현하는 일을 흔들림 없이 이어가고 싶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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