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직터뷰]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디지털 매핑 이어 AR 도입…과학관 같은 역사박물관 만들겠다"

  • 허석윤,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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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1  |  수정 2023-11-29 15:38  |  발행일 2023-03-01 제13면
[논설위원의 직터뷰]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디지털 매핑 이어 AR 도입…과학관 같은 역사박물관 만들겠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어디든 땅을 파면 유적과 유물이 발견될 정도니 도시 자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신라 문화의 정수를 오롯이 집약해 놓은 곳이 경주박물관이다. 쌀쌀한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달 23일,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자 깨끗하게 정돈된 조경이 쾌적한 느낌을 준다. 몇 발짝 걷자 메인 전시관인 신라역사관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건축미가 돋보이지만, 전체 주변 풍경은 꽤 낯설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예전에 이곳에 왔던 건 수학여행 때 딱 한 번, 그것도 무려 40년 전이었으니.

오랜 세월을 핑계로 내 기억에선 희미해졌지만 경주박물관은 그 반대였다. 세월을 자양분 삼아 생명력을 키워가고 있다. 박물관의 역할도 단순한 유물 전시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보고, 즐기고, 추억을 쌓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박물관 문외한일지라도 누구나 체감할 수 있다.

당초 경주박물관에서 신라역사관과 미술관, 특별전시관, 영남권 수장고 등 거의 전체 시설을 돌아볼 생각은 없었다. 더구나 있는 줄도 몰랐던 박물관 내 커피숍에 앉아 멀찍이 떨어져 있는 월정교를 보게 될 줄도 몰랐다. 그건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의 친절한 안내 덕분이었다. 그날 운도 좋아서인지 때마침 열리고 있던 특별전(金鈴·어린 영혼의 길동무)도 관람하는 호사를 누렸다. 신라 능묘 금령총에 묻힌 아이의 삶과 사후 여정을 대형 영상으로 보는 것도 인상 깊었다. 스토리텔링과 디지털 기술 덕에 전시 유물의 생동감이 온전히 전해지는 듯했다.

분명 박물관은 살아 있다. 관람과 견학의 고유 역할에 더해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앞으로 박물관은 어떻게, 얼마나 더 진화할까. 지난해 9월 부임해 경주박물관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함순섭 관장으로부터 박물관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진화하는 경주박물관
"박물관은 이제 유물과 첨단기술 공존
내부 시설 싹 바꿔 관람 최적화하고
영상 접목 등 전시관 디지털화 속도
비밀 품은 월지유물 프로젝트도 추진"

▶본인 소개를 하자면.

"경주 쪽샘(황오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곳은 그 당시에도 유적 발굴이 활발했기에 학교를 오가는 길에 발굴현장을 보는 게 일상사였다. 어릴 때여서 무슨 이유였는지는 몰랐지만 땅을 파헤쳐 나온 물건들을 붓으로 털고 하는 작업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나중에 경주어린이향토학교를 다니면서 문화재 발굴의 의미를 알게 됐다. 경주에서 태어난 덕에 역사문화 프로그램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게 향후 진로 선택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고등학교(경주고) 졸업 후 경북대와 대학원에서 사학과 고고학을 전공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리고 직장을 구할 시점에 아무래도 문화재 관련 업무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 근무지가 국립중앙박물관이었는데 그곳에서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학예사, 큐레이터, 관장 등 박물관 종사자 중에 경주 출신이 가장 많다. 어릴 때 체험한 문화적 정서의 영향이 그만큼 큰 것 같다."

▶거쳐온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박물관 업무와 관련해 상당한 능력을 갖춘 듯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본인의 경쟁력은.

"대단한 능력자는 아니고 관심을 두고 노력한 부분은 있다. 우선 기획전시를 많이 했다. 그중 10여 년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내 최대 규모 고분인 '황남대총' 특별전을 연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 최고 박물관에서 신라 문화의 정수를 소개했다는 점과 함께 당시로선 생소했던 스토리텔링 기법을 고고학 전시에 접목했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어렵게 느껴지는 고고학을 대중적 글쓰기로 풀어내려고 노력했는데, 그 덕분인지 전시 기간에 발간했던 도록이 완판되는 이례적인 일도 있었다. 또 행사가 끝난 후 전시공간이 G20회의장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박물관의 다양한 활용도를 목격하기도 했다. 이외에 고고학 전공자로서 도면을 해석하고 그리는 데 익숙하다. 이런 장점이 반영돼 박물관 신축 및 이전 작업에 많이 관여했다. 중앙박물관 용산 이전, 부여박물관 재개관, 김해박물관·대구박물관 신축에 참여했다."

▶오랜만에 와보니 예전에 알던 박물관이 아니었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전시관이 세련되고 고급스러워진 것이다. 경주박물관도 1975년에 지어진 건물 외관은 그대로지만 실내 인테리어는 완전히 새로워졌다. 조명과 진열장 등이 관람에 최적화됐고, 전시관 입구는 호텔 로비를 연상케 할 정도로 실내 디자인도 품격을 갖췄다. 또한 전시관의 디지털화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제 박물관은 고대 유물과 현대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장소인 셈이다. 우리 박물관에선 이미 디지털 매핑 영상을 적용해 이차돈 순교비를 비롯한 유물 전시에 활용 중이다. 유물에 담긴 스토리를 입체적이고 생생한 영상으로 접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이와 함께 휴대폰으로 관람의 재미를 배가할 수 있는 AR(증강현실) 기술도 도입할 예정이다."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게 박물관도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주박물관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하고픈 일은.

"가장 중요한 게 이용에 차별이 없는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박물관이 오래된 편이라 장애인, 노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부족한 형편이다. 박물관을 찾는 누구라도 불편함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편의시설 확충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리고 월지프로젝트도 10년간 추진할 계획이다. 월지(月池)유물은 3만3천점이나 되지만 70년대 중반에 발굴돼 대부분 수장고에 쌓여 있는 상황이다. 박물관 직원들이 먼저 건의해 시작하게 됐는데, 월지유물 분석을 통해 통일신라의 생활문화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논설위원의 직터뷰]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디지털 매핑 이어 AR 도입…과학관 같은 역사박물관 만들겠다
경주 문화관광의 시작과 끝
"차별 없는 박물관 이용이 가장 중요
장애 노약자 편의시설 확충에 주력
수려한 조경 속 휴식…석양도 일품
체험 가득한 천년보고 봄나들이 추천"

▶경주박물관에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 줄 몰랐다.

"박물관 정원에 다보탑과 석가탑 모형이 있는데 그걸 진짜 탑으로 아는 사람도 일부 있다. 모형을 전시하는 건 박물관 취지에 맞지 않기에 그 탑들은 남쪽 부지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박물관 뒤뜰에 있는 고선사 삼층석탑과 건물지를 옮길 계획이다. 고선사는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유서 깊은 사찰인데, 1970년대 덕동댐 공사로 수몰되기 전 탑과 건물지가 지금 자리로 급하게 옮겨진 것이다. 고선사탑을 중앙 정원에 다시 옮긴 후에는 AR기술을 이용해 탑과 함께 옛 고선사 모습을 영상으로 다 볼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과학관 같은 박물관인 셈이다. 성덕대왕 신종, 신라금관에 더해 고선사 탑도 경주박물관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경주박물관 100배 즐기기 팁 같은 것도 좋고 마무리 인사를 해달라.

"박물관은 단지 유물을 관람하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깼으면 좋겠다. 먼저 매년 이슈가 되는 주제로 여는 기획전시회를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경주박물관은 조경미도 뛰어나다. 곧 봄이 오면 50년 된 벚나무와 꽃들이 만개해 수려한 자태를 뽐낼 것이다. 또 커피숍에서 보는 석양도 일품이다. 올해 경주박물관 방문객이 130만명쯤 될 것인데, 모두가 편안하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나아가 우리 박물관을 경주 역사문화관광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만들고 싶다."

허석윤 논설위원 hsyoon@yeongnam.com

◆함순섭 관장 주요 경력=△중앙박물관 고고부 학예연구사 △중앙박물관 개관전시팀장 △대구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 △대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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