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레이더] 화학업체들의 탈유럽

  •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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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7  |  수정 2023-03-07 07:25  |  발행일 2023-03-07 제12면

[경제 레이더] 화학업체들의 탈유럽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책임연구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느덧 1년째다. 그 사이 에너지 시장 판도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요 산유국과 소비국은 각자가 원하는 바를 최대한 얻어내기 위해 열심히 주판을 튕기고 있다.

앞으로 에너지 시장에서 러시아와 OPEC은 기존 주력 시장이었던 유럽과 인도를 각각 맞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서방의 여러 제재 속에서 진퇴양난에 처한 러시아가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곳은 인도 정도에 불과하다. 인도 역시 경제·정치·역사적으로 러시아 편에 설 이유가 충분히 넘친다. 인도를 잃게 된 OPEC은 대체 시장으로 유럽 진출을 노릴 전망이다. 지난 20년간 유럽에 적용해 온 OSP(Official Selling Price)할인 폭을 줄이고 있는 최근 추세에서 유럽시장 확대에 대한 OPEC의 자신감도 엿보인다.

중국은 러시아나 OPEC 중 어느 한쪽 편에 완전히 서기보다는, 그 중간 어딘가에 서서 밸런스를 맞춰갈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와 달리, 중국은 정치적으로 고려해야 할 이슈가 많아 무작정 러시아 편에 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이란과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 또한 확대하며 그들까지 암묵적으로 챙겨가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은 이번 판에서 유일하게 선택권이 없다. 러시아 의존도가 압도적이었던 만큼 그 빈 자리는 OPEC, 미국, 아프리카 등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문제는 과거에는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받았으나, 지금은 구매처가 어디든 대부분 대륙을 건너 유조선으로 가져와야 한다.

더욱이 천연가스는 PNG가 아닌 LNG 형태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산유국 중 지리적으로 가까운 OPEC 중동 국가들의 비중이 높아질 전망이다.

이번 에너지 판도 변화에서 유럽이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는 것의 함의는 유럽 내 전통적인 고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석유화학 산업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유럽 내 에너지 시장은 구조적 불확실성에 갇혀 있고, 과거보다 높아지는 에너지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다. 특히 물류비가 정상화된 만큼 올해 예정된 아시아 증설 물량이 저가에 대거 유입될 수 있다는 점도 유럽 내 업체들에게는 부담스럽다.

이에 따라 최근 Dow, BASF 등이 보여준 것과 같이 유럽 내 생산설비를 축소 또는 영구폐쇄하는 글로벌 화학업체들의 탈유럽 움직임은 올해부터 필연적 추세가 될 전망이다.

내년부터 대규모 크래커 유입은 일단락되고, 글로벌 전방 수요도 점진적으로 회복되며 석유화학 시황은 다운사이클에서 점차 벗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수급밸런스가 개선되는 상황에서 경쟁 열위에 있는 일부 유럽 생산설비 합리화까지 겹친다면 업황 회복강도는 생각보다 더 클 수도 있겠다.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12% 내외로 결코 작지 않다. 특히 아시아는 유럽과 동일하게 석유화학 설비의 70% 이상이 NCC (나프타 분해설비)기반인 만큼 유럽 구조조정의 상대적인 수혜를 기대해볼 수 있겠다. 길고 긴 터널을 거의 지나가고 있는 이번 다운사이클은 올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끝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 시점부터는 글로벌 업체 중에도 특히 아시아 화학업체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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