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시간' 논란 속 눈에 띄는 '주4일제' 대구경북 기업

  • 정우태,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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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8 18:52  |  수정 2023-03-28 18:53  |  발행일 2023-03-29
대구 YH데이타베이스 2년째 4일제 시행 중
영천 태산 근무 일수 줄이고 생산성 높아져
근로자 삶의 질 높이는 방향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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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일제를 시행하고 있는 IT업체 YH데이타베이스의 직원들이 대구 수성알파시티 사무실에서 근무에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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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데이타베이스의 주4일제 시범시행 홍보물.  

근로시간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으면서 이참에 방향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 최대 근로시간(주 52시간) 틀을 유지하되 적용 기준을 '주'가 아니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그러나 일선 현장에선 사실상 '장시간 근무'를 부추긴다며 반발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 대구경북에는 '주 4일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기업이 속속 나오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서도 일정부문 유연성도 확보함에 따라 좋은 롤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근로시간 조정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정부와 경제계, 기업주들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주 4일제 도입에 성공한 지역 기업
대구 수성알파시티에 위치한 IT업체인 YH데이타베이스(대표 최대룡)는 벌써 2년째 주 4일제를 시행 중이다. 이 회사는 코로나 1차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3월 주 4.5일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전격적인 결정이었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직원 만족도는 물론 업무 능률도 향상됐다. 시범 도입 기간을 거친 뒤 주저없이 주 4일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김정원 YH데이타베이스 이사는 "똑같은 연봉, 똑같은 업무량을 보장할 때 근무시간을 줄여도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며 "일종의 복지 차원에서 근무시간은 줄이고 업무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요즘 청년 근로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먼저 4.5일제를 시범 도입해 문제를 보완했는데, 직원 업무량을 정량화한 근태 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집중도 있는 업무를 유도할 수 있었다"며 "업무량을 수치화할 수 있다면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이 있다. 경북 영천의 <주>태산은 수요일을 휴무일로 정했다. 월·화요일에 일하고 수요일 쉰 뒤 목·금에 다시 일하는 시스템이다. 매주 징검다리 휴가가 실시되고 있는 것. 빵에 들어가는 앙금을 전국에 납품하는 이 기업은 적지 않은 생산량을 소화하지만 노사 상생을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허광옥 태산 대표는 "무턱대고 근무 일수를 줄이면 당연히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공정을 고도화했다"며 "무엇보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정착시킬 수 있었다. 생산성은 더욱 높아졌다. 주 4일제 도입 이전보다 매출이 더 늘어 급여도 올리고 성과급도 더 챙겨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 근로자 삶의 질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
노동계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확대 개편하겠다고 했다. 일을 몰아서 하고 대신 10일 이상 장기휴가를 활성화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과도한 업무량에 법으로 보장된 연차 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장기휴가 보장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게 근로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1천915시간(2020년 기준)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 38개국 가운데 5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 근로시간(1천716시간)에 비해 199시간이나 더 많다. '2021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보면 근로자 연차 소진율은 절반 수준인 58.7%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근로자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남명선 노무사는 "그동안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해 왔는데 오히려 장시간 근로를 보장하는 건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장기휴가도 보장이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일단 근무시간을 과도하게 늘리는 데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말 특별한 경우 내부적 합의를 통해 예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주 69시간 근무제가 제도적으로 허용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8일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 경제계 노력이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이 장관은 이날 경제 5단체(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청년 세대의 눈높이에서 일하는 방식과 기업 문화를 개혁하는 데 노력해 달라"면서 "눈치 보지 않고 휴가·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 조성, 퇴근 후 업무 연락 자제 등 기업문화 혁신,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일하는 방식 개선 등을 통해 근로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최시웅기자 jet123@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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