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다시 4월, 서럽다 뉘 말하는가

  •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 |
  • 입력 2023-04-10  |  수정 2023-04-10 07:56  |  발행일 2023-04-10 제13면

[행복한 교육] 다시 4월, 서럽다 뉘 말하는가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퇴근길 비구름 비껴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언뜻언뜻 보인다. 나는 유튜브로 추모제를 들으며 느리고 슬픈 걸음을 걷는다. 159개의 우주가 사라진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159번의 밤과 낮이 지났다. 졸지에 자식과 형제자매를 잃은 유가족들은 400여 개의 질문을 만들어 정부에 물었지만 단 하나의 답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딸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쓴 편지를, 오빠가 언니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듣는데 눈물이 쏟아진다. 울지 않으려 애를 쓰며 편지를 읽는 게 더 슬프다. 9년 전 4·16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10·29 이태원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 앞에서 합창한다. 노래를 부르며 울 수는 없으니 슬픔을 짓누르는 부모들의 심정은 어떨까. 내 새끼도 아닌데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새끼 잃은 부모들은 어떻게 참고 살아갈까.

9년 전 수학여행을 가기 전 단원고 학생들은 벚꽃 아래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 벚꽃은 지고 없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진 때문이다. 올해는 관측 이래 가장 일찍 꽃이 피었다고 한다. 꽃을 즐기면서도 사람들은 이른 꽃을 걱정한다. 꽃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피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유월을 안고 달빛을 안고 핀다던 모란은 열흘 전에 피고 벌써 꽃잎이 뚝뚝 떨어진다. 80여 년 전 강진에 살던 시인 영랑은 뚝뚝 떨어지는 모란꽃이 서러워 삼백예순날 나의 봄을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이제 겨우 사월 초순인데 대구 우리 학교 화단의 모란은 피고 지고 있다. 정말 찬란한 슬픔의 봄이다. 나는 나의 봄을 기다려도 될까. 우리에게 봄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모란은 피고 말면 그뿐 나도 하냥 서러워 운다.

벌도 줄어들었다는데, 꽃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피면 벌들은 엄청 바쁘겠지. 벌이 모자라 꽃가루받이를 못 하는 식물들은 없을까. 꽃들이 차례로 피어야 벌들도 길게 먹고살 수 있을 텐데 정작 꿀이 필요할 때 꽃이 없으면 어쩌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이른 봄 이른 꽃. 오래지 않은 날, 서럽게 진 꽃들에 더해 이렇듯 또 이른 꽃들이 졌으니 서러움이 더하다. 교실의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출근길에 느닷없이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노래가 떠오른다 '이렇게 슬픈 날이 많으니' '서럽다 뉘 말하는가 흐르는 강물을. 꿈이라 뉘 말하는가 되살아오는 세월을.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 빛나는 그 눈 속에 순결한 눈물 흐르네.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가네 가네 한 많은 세월이 가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는 사월이 참 길다.

서러운 4월이지만 자랑스러운 4·19혁명도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 이승만을 추앙하는 움직임이 다시 생겨나고 있다. 이승만의 폭압에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제주에서 죽어갔음에도 빨갱이 타령으로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승만에 저항한 최초의 민주화 운동은 대구에서 일어났다. 2·28민주운동은 정의와 저항의 불씨가 되어 대전 3·8민주의거, 마산 3·15민주의거를 거쳐 4·19혁명으로 타올라 끝내 이승만을 끌어내렸다. 헌법 전문에 쓰인 4·19혁명의 이념은 '불의에 항거한' 행동이며,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것은 '정의'로써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해 나가는 것이다. 그 주역이 학생들이었으니 2·28민주운동은 주체를 분명하게 하여 2·28'학생'민주운동이라고 명명해야 정확하다. 그런데 대구 학생들은 2·28민주운동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2월28일이 봄방학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2·28민주운동이 씨앗이었고 그 열매가 4·19혁명이니, 다가오는 4월19일에 학생들이 2·28민주운동을 자랑스러워 하도록 교육청이 나서서 모든 학교에 계기교육을 실시하도록 주도해야 한다. 늦었지만 개학 전에 있는 3·1절도 내년부터는 3·8대구만세운동일에 계기교육을 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어제가 부활절이었다. 꽃들이 피고 지고, 지고 핀다. 수많은 젊은 목숨이 너무 일찍 떠난 4월에 부활절이 있다는 것이 한편 위로가 된다. 생명의 의미가 우리 가운데 깊이 새겨지도록 우리 사는 세상도 부활하는 사월이면 좋겠다.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기자 이미지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