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상권 다변화 시대] 신축 아파트단지로 쇠락하는 봉리단길 상권

  • 최시웅,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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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6 18:30  |  수정 2023-04-17 07:30  |  발행일 2023-04-17
봉리단길의 변화 '20~30대에서 40~50대로'
트렌디한 카페, 음식점은 프랜차이즈 상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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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들이 사라진 건물에 '임대'라는 현수막만 붙어 있다. 지난 7일 대구 중구 봉리단길. 한때 줄을 선 손님들 때문에 지나가기도 어려웠던 거리가 한산했다.
지난 7일 오후 9시쯤 대구시 중구 대봉동의 한 대로변. 불 꺼진 상가들 중 '마틸다'라는 상호명의 가게만 불이 켜져 있었다. 가게 내부는 유독 중장년층 사람들로 붐볐다. 술과 어묵탕을 먹던 이들은 스피커에서 '가객(歌客)'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 나오자, 이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콘서트장에서나 볼 법한 '떼창'이다. 그러면서 요란하게 술잔을 기울였다. 골목 한복판은 중장년층의 합창소리로 한가득이다. 이 곳은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 '쌍목'이란 상호로 운영됐지만, 재개발로 인해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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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나와 신축 주상복합 아파트 쪽으로 난 큰 길을 따라 400m쯤 걸어가자 차량 두 대가 마주보고 지나갈 수 있는 좁다란 골목이 나타났다. 이 곳은 2016년까지만 해도 '봉리단길'로 불리던 소위 잘나가던 골목상권이다. 봉리단길이란 이름은 대봉동의 '봉'자에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의 명소인 경리단길을 합친 말이다. 2014년 무렵부터 이색 카페나 식당 등이 생겨나면서 형성됐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올라 평일에도 청년들이 많이 찾았다.
봉리단길은 상권 형성의 필수 조건인 '접근성'과 '유동인구' 없이 맛집들로만 이뤄진 첫 상권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동성로와 꽤 떨어져 있고 좁은 골목으로 형성된 탓에 주차가 쉽지 않다. 사무지구나 대학가,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거리에 사람들을 끌어들인 건 대부분 '맛집'이었다. 임대료가 저렴해 적은 돈으로도 창업이 가능했다. 분위기 있는 실내포차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웠던 수제맥줏집, 이자카야 스타일의 퓨전주점 등이 속속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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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밤 9시쯤 대구 중구 대봉동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곳은 2016년 대구에서 '핫'했던 골목상권이었다.

2018년쯤부터 봉리단길이 바뀌기 시작했다. 임대료가 오르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때문에 너도나도 모여들던 젊은 사장들이 하나둘 다른 곳을 찾아 떠났다. 당시 이 곳을 유명하게 만든 대표 맛집들은 이제 상당수 자취를 감췄다. 트렌디한 카페나 이색 음식점들이 떠난 자리는 다른 가게로 잘 채워지지 않았다. '임대'라고 쓴 안내문만 곳곳에 붙어 있었다. 인근 부동산 유리창엔 상가 매물 광고가 주택 매물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꿈과 낭만의 거리, 대봉동 대로수길 상인회'라고 적힌 스티커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남은 가게는 프랜차이즈 점포들이다.


지난해 주상복합아파트 2곳이 들어섰고 2곳 더 지어지면서 봉리단길은 전형적인 '아파트 상권'으로 바뀌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포진하는 주거지역 특징을 보여준다. 봉리단길에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과 과일이나 채소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마트가 곳곳에서 문을 열었다. 요즘 봉리단길이 40~50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주로 찾는 배경이다.


주택과 상가가 얽힌 이면도로에 형성된 작은 상권에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면서 찾아온 위기를 상인들은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다. 봉리단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39)씨는 "아파트가 곳곳에 생기면서 거주민들의 상권 이용이 조금씩 발생하고 있다"며 "아직까진 전체 손님 중 아파트 주민이 20%이다. 다소 적은 편이지만 긍정적 영향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봉리단길이 유행하기 전부터 이 곳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송남수 미스터양꼬치 사장은 현재 '과도기'를 거치는 중이라고 했다. 송 사장은 "한때 대구에서 가장 잘나가던 거리가 몇년 만에 활기를 많이 잃었다. 임대료는 오를 대로 올랐는데 주변에 아파트 공사를 시작하면서 버티지 못하고 떠난 상인들이 많다"며 "여러가지 돌파구를 찾고 있다. 상인들끼리 '대로수길'이란 명칭을 끌어와보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최시웅기자 jet123@yeongnam.com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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