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윤 대통령의 슬라이더는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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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0  |  수정 2023-04-10 17:34  |  발행일 2023-04-10 제26면
윤 대통령의 시구는 돌직구

사석에서도 격정적인 기억

취임1년 앞두고 지지율 정체

어렵지만 내부에서 원인 찾아야

돌직구 넘어 변화구가 필요해

[박재일 칼럼] 윤 대통령의 슬라이더는
논설실장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일 삼성라이온즈 개막식 시구는 대구에서 보는 오랜만의 공식 정치 이벤트였다. 자칭 야구광 대통령은 괜찮은 폼으로 공을 뿌렸다. 허구연 KBO총재는 '돌직구'라 덕담했다. 중계화면을 보다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8년 전인가 집 주변 맥줏집이 있었는데, 지인 소개로 합석해 마주 앉은 이가 윤석열 당시 대구고검 검사였다. 그는 이른바 2012년 대선의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 검사로 윗선과 부딪쳐 좌천돼 대구에 왔다. 서로 기억은 못 했지만, 1995년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사고 당시 대구지검 강력부 검사로 구면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궁금증을 질문 삼아 던지자 윤 고검 검사는 담아둔 심정을 쏟아냈다. 먼저 자신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무런 사감이 없고 정치성향을 굳이 말하면 우파에 가깝다고 했다. 조영곤 검사장과 맞선 것도 수사 철학이 완전히 배치됐기 때문이란 취지로 항변했다. 윤 검사는 수사는 초기에 장악해야 증거가 오염되지 않고 공소 유지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열변을 토했다. 고향이 원래 충청도이고, 연세대 교수였던 부친에다 법대시절 '전두환 모의재판' 일화도 얘기했다.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어쨌든 3시간가량 들은 것들을 기사화했다면 특종이 여러 개 되었을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될 줄은 몰랐지만, 격정적이었고 한편 담백했다고 기억한다.

윤 대통령의 지지도는 취임 1년을 앞두고 의미 있는 상승을 보여주지 못한다. 추락까지는 아니어도 마지노선 30%대를 방어한다. 야당 대표가 대장동에 갇힌 꽃놀이패 상황임에도 그렇다. 이유는 뭘까? 물론 주변이 열악하다. 먼저 과거 대통령과 달리 언론환경이 만만찮다. 공영방송 라디오에서 사회자가 '우파 언론들이 돌직구 시구 띄우기로 도배한다'고 맹비난하는 게 가능하다. 가혹하지만 어쩌랴, 언론자유라는데. 당연히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터다. 윤 대통령은 첫 공직선거가 대통령 선거였다. 정치 이력이 일천하다. 격정의 진정성은 몰라도 완성도가 부족하기 쉽다.

'69시간 근로'만 해도 어느 참모진이 정책브랜드를 작명했는지 의아하다. 노동의 유연성 정도로 개념 정리해야 할 사안에 흥정하듯 수치를 마음껏 올려, 하루 8시간 주40시간에 익숙한 국민은 그 깊은 뜻을 알 길이 없게 됐다. '초등 5세 입학정책'도 충정은 이해되나, 미숙한 포장에 진정성이 가려진 예로 보인다. 한일관계와 정상회담? 물론 난제다. 국민의 정치성향이 좌우로 완전히 쪼개진 것도 모자라 역사 인식마저 궤적이 다른 미사일이 됐다. 한쪽은 역사 왜곡에 물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해야 할 사안이다. 더구나 외교 현안 아닌가. 외교에서는 본심을 드러내는 돌직구가 미덕이 아니다. 같은 말도 달리 해석된다.

무엇보다 '대통령 멘토'가 버젓이 등장하는 상황이 납득하기 어렵다. 멘토가 나서 정치인, 국회의원들을 모아놓고 한 수 가르치는 형국이다. 이건 정치 코미디에 가깝다. 선진 민주국가에서 나는 참모는 들어봤어도 대통령 멘토를 들어보지 못했다. 친윤이란 파벌정치(Faction Politics)의 조짐도 불길하다. 이쪽은 과유불급, 즉 지나치면 곤란한 영역이다. 윤 대통령은 돌직구의 충정을 넘어 유연한 슬라이더와 커브로 장착된 변화구가 필요해 보인다. 미완의 정치경력을 보완해야 완성도 높은 정치를 꽃피울 수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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