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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음〈소설가〉 |
4월16일은 세월호 참사 9주기이다. 나는 4월15일에 세월호 특집 방송에서 발언을 하기로 했다. 발언하는 시간은 짧지만 내용을 쓰지 못하고 마음이 부대끼며 2주가 지났다.
나는 그날의 개인적인 기억을 상기해 보았다. 그날 아침에 진도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어릴 때 나는 그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놀았다. 고등학교 때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던 바닷길을 걸으며 커다란 소라를 줍곤 했다. 그날 아침 뉴스에서는 그 배에 있던 학생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안도했다.
그날 오후에 아이들과 남편과 안산으로 향했다. 나는 봄이면 대부도의 갯벌을 밟고 종일 걸어 다녔다. 고둥도 소라도 조개도 아기들은 다 귀여웠다. 갯벌을 밟으며 무안한 자유로움을 느끼다가 칼국수를 먹고 호두과자를 사서 돌아오곤 했다. 그날 남편이 운전을 했는데, 안산 가까이 가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짙은 안개였다. 앞에 가던 차들이 일제히 비상등을 깜빡였다.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돌아가자고 남편을 재촉했다. 뒷자리에 탄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안산을 벗어나자 거짓말처럼 안개가 사라졌다.
집에 돌아왔을 때, 구조되지 못한 아이들의 소식이 뉴스에서 나왔다. 배가 가라앉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화면을 채웠다. 실종자의 이름이 사진과 함께 한 명씩 공개되었다. 나는 눈을 감으면 방 안에 물이 가득 차 있는 환상에 시달렸다. 그 안에 죽은 아이들이 떠다녔다.
그 후 세상이 멈춘 듯, 사람들은 슬픔에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나는 다른 작가들처럼 팽목항에 달려가 유가족들과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촛불집회의 광장에도 나가지 않고, 내 아이들과 있었다. 세월호에 관한 소설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에 통증이 왔다. 최근에서야 낡은 배에 관한 장편을 썼다.
나는 가끔 그날의 안개를 떠올린다. 태풍처럼 몰려왔던 안개는 무엇이었나.
그 시간쯤 아이들은 배 안에서 수장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이 걸어서 돌아가는 길이라 흰색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갈 길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걸어갈 길이 만들어지느라고, 함부로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내 앞을 막았던 것인지도. 대자연까지 마음이 동해서 움직였던 것인지도. 그날 아이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나와 안갯 속을 걸어 자기들 집으로 돌아갔길 바란다.
304명의 희생자가 천천히 걸어서 따뜻한 밥과 국이 차려져 있는 집으로 돌아갔기를.
박지음〈소설가〉

박지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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