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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에코프로 파트너스 대표 |
최근 들어 더 심해지기는 했지만 과거에도 수도권 집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서울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흡인하여 서울 집중의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 이황 선생께서 혼탁한 중앙 정부를 대신하여 지방에서 사림을 육성하고 궁극적으로 중앙의 혁신까지 시도한 것은 일종의 지역발전을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퇴계 선생은 당시 인재들이 성균관과 향교 같은 관학으로 집중되는 현상과 남을 비방하여 자리를 유지하는 선비들을 한탄하였다. 이를 타파하기 위하여 퇴계 선생은 서울 조정에 머무는 것보다 고향에 내려가 유능한 인재를 모아 '사람다운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 본인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다. 물러남의 길이면서 더 큰 꿈을 향한 길이었다.
지금 우리 대구경북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지방은 수도권 집중, 인구감소, 청년유출 및 지방소멸 등의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온갖 정책수단과 자원을 동원하였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다가 최근에 들어와 퇴계 선생의 귀향길과 같은 디아스포라 전문가들의 귀향은 지역발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삼성의료원장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주치의라는 최고 수준의 경력을 갖춘 이종철 박사께서는 화려한 이력을 뒤로하고 고향인 창원으로 내려가 보건소장으로 일함으로써 우수 인재들의 수도권 집중으로 신음하는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창원보건소장으로 4년 일하는 동안 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의사로서의 소명인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의사 인생을 마무리하였다.
우리 지역에도 희망은 있다. 중기청장(현 중기부 장관에 해당)과 청와대 중소기업비서관이라는 고위직을 역임한 송종호 원장은 2019년 경북도도 아닌 영천시의 작은(?) 출연기관인 〈재〉경북차량용임베디드기술연구원 원장직을 맡아 많은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수도권이나 중앙정부의 더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해 적당히 시간 때우면서 잠시 머무는 자리로 이용할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주말도 없이 영천에 머물면서 불철주야 현장지향적이며 실질적인 기업지원에 몰입하고 있다..
최근 2조원의 추가투자유치 등 에코프로그룹의 총 5조원대 대규모 투자유치를 통해 포항이 명실상부한 2차전지 소재 산업의 세계적 도시로 부상한 배경은 이동채 회장의 고향에 대한 애정과 포항이 지닌 입지적 이점이 어우러진 결과다.
위 사례들은 지역발전을 위한 두 가지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먼저 이들은 현재의 자리를 이용하여 더 큰 지위나 권력을 쫓는 출세 지향적이기보다 구체적인 성과로 지역공동체에 봉사하려는, 제대로 된 직업윤리를 가진 전문가들이다. 전문지식과 기술은 당연하고, 자신이 맡은 일은 하늘의 부름을 받아 맡겨진 일이라 생각하는 소명(召命·calling) 의식과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의 일에 만족, 즉 자족(自足)하는 마음을 가진 전문가들이므로 앞으로 지역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발굴, 활용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구유출, 특히 청년유출을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고도경제성장과 더불어 지역을 떠나 외부에서 성공하였거나 활동하고 있는 유능한 인재들의 귀향을 유도하여야 한다. 귀향하거나 지역으로 돌아올 수는 없어도 향수를 지니고 지역에 기꺼이 기여하려는 디아스포라를 찾아 이들의 투자를 유치함과 동시에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장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재훈 에코프로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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