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미경 <경북 구미경찰서 수사심사관실 피해자 전담 경찰관> |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친분을 맺고 관계를 유지해야만 생명력 넘치는 삶을 영위하게 된다. '관계' 없이 혼자 덩그러니 살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존재다. 결혼생활 30년간 불신의 골이 깊어져 대화마저 단절된 상태에서 부부가 서로를 비난하면서 던진 한마디는 오랫동안 상처로 남는다. 층간 소음 문제로 아랫집이 윗집을 탓하면서 발생하는 이웃 간 감정싸움이나 친구 사이에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툭툭 내뱉은 한마디로 입은 상처 등도 오래간다.
나만의 문제는 혼자 상담을 받으면 달라질 수 있으나, 상대와 나의 관계 문제는 결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특히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의 말싸움은 악감정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고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사건·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막기 위해 경찰서에서는 '회복적 경찰 활동'이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쌍방이 원하는 진정한 욕구(Needs)와 상대에게 전해 주고 싶은 진심이 무엇인지 전문가가 중재하는 활동이다.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상대에게 비난 섞인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상처를 주게 된다. 마음의 소리를 '번역(중재)'해 진심을 들려주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
한 부부의 사례다. 부인이 "젊은 시절 가족과의 식사는 멀리하고 친구나 만나러 다니고, 내 말은 듣지 않고 어머니 말만 듣고, 내게 육아를 맡기고 매일 늦게 귀가했다"고 그동안의 불만을 쏟아내자 남편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는 현실에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말다툼이 일었다. 이때 중재(번역)에 나선 회복적 경찰 활동 전문가는 "과거 남편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군요"라며 부인의 속마음을 드러냈고, 이 한마디에 부인은 펑펑 눈물을 흘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은 아내의 말이 자신을 탓하는 비난이 아닌 자신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부인에게 사과하고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경찰의 회복적 활동이 추구하는 지향점은 분명하다. 인간관계에서 회복이 일어나면 더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되고, 신고 출동과 처벌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반복되는 사건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층간소음 문제도 충분한 관계 회복이 된다면 형사사건으로 번질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회복적 경찰 활동은 사건 발생 이전이나 발생 이후에도 상관이 없다. 서로 관계가 있으면서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회복적 경찰 활동은 항상 열려 있다. 경찰의 회복적 활동 제도를 국민이 알고 활용하기를 기대한다.
정미경 <경북 구미경찰서 수사심사관실 피해자 전담 경찰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