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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재윤기자〈경북부〉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왕국 때부터 전해져 온 이야기다. 이야기 속 커다란 왕의 귀는 왕의 치부를 뜻하지만, 사실 귀가 크다는 것이 왕의 허물이 될 순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귀가 크다'는 것은 작고 낮은 소리도 소중하게 들으라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국 버전도 있다. 신라의 48대 왕인 경문왕이 그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에도 실려있다. 신라시대 유물 중 그리스식 유리 세공품과 보검 등이 있는 것을 보면 고대부터 중세까지 그리스계 국가들과 교역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형태로든 실크로드를 거쳐 교류하는 동안 이 이야기가 신라로 전해져 구전돼 온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더니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로 변했다고 한다. 왕이 즉위하자 그의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는데, 그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던 두건장이는 죽기 직전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 대숲에 바람이 불 때마다 이 소리가 나 왕이 대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게 했다는 내용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한 우물이 한국 버전에서 대나무 숲으로 바뀐 정도이나, 이야기 내용은 전반적으로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하겠다. 귀가 두 개인 것은 그만큼 잘 들으라는 의미를 지녔다. 그것도 한쪽으로만 듣지 말고 양쪽을 균형 있게 들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특히 이야기를 들어야 할 장본인이 듣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조직 생활에선 더 그렇다. 경청하는 귀, 다소 따가워도 진실을 소통하는 귀는 결국 본인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덕으로 돌아온다.
잠시 수치와 마음 상함을 참지 못하고 귀를 닫고 입을 닫으려 하는 일은 조직 내 윗사람으로선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임금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주변의 따가운 질책도 받아들여야 한다. 눈과 귀가 막히면 자신만 손해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구설수가 있다. 특히 윗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돈다.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왕도 눈과 귀가 막히면 훗날 왕의 자리엔 어울리지 않았던 인물로 평가될 수 있다.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피재윤기자〈경북부〉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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