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완의 디자인 생각] 청년들이 살고싶은 도시는

  • 정재완 북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 |
  • 입력 2023-04-21  |  수정 2023-04-21 07:38  |  발행일 2023-04-21 제36면
청년들은 한 곳 정착보다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도시'를 원한다

[정재완의 디자인 생각] 청년들이 살고싶은 도시는
[정재완의 디자인 생각] 청년들이 살고싶은 도시는
정재완 (북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지방소멸. 2014년 일본 민간조직이 낸 보고서에서 시작된 표현이라고 한다. 단어가 주는 위기감 때문인지 인구 고령화와 저출생에 따르는 지역 문제를 말할 때 자주 인용이 되는데, 이것이 적절한 단어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소멸은 흔적이나 자국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다. 또 존재 자체를 기억에서 지워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소멸이라는 단어는 그 대상이 되는 지방 소도시와 시골에 박탈감을 안긴다. 어딘가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당하는 자의 상실감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불현듯 2020년 2월, 코로나 확진자의 폭발적인 증가를 겪고 있던 대구를 '봉쇄'해야 한다는 일부 여론과 전문가들의 진단이 떠오른다. 당시 봉쇄 도시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이 내게는 무척이나 컸다. 아무튼 자극적인 단어보다는 문제를 정확하게 짚는 단어를 사용하는 편이 낫다. 이미 '소멸'이라는 선동적인 표현은 지나친 위기의식을 부추겨 단기적인 보조금 대책만 남발한다는 지적도 많다.('지방소멸, 용어의 위험성', 한국일보, '지평선' 2018년 8월19일자)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되어 가는 지역에서는 청년을 이주시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계획을 세운다. 이런 생각은 과거에 귀농·귀촌 바람이 불어 청년들이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거나 새로운 사업을 일구는 사례를 보면서 얻은 것 같다. 마을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있다는 상식이 자리 잡아가면서 그들을 위한 예산 지원도 적지 않다. 지자체는 청년들에게 일거리를 만들어 주고 살 집도 제공한다. 오기만 하면 많은 혜택과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지자체의 홍보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방 소도시나 시골로 이주하는 청년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청년을 서울이 아닌 지역으로 유인하기 위한 고민이 깊다.


청년세대 붙잡아두려는 유입책보다
자율성 보장하는 열린문 정책 필요
지역무대 활동 디자이너 속속 등장
해당 지역에 묶이지 않고 업무 수행

지역문제는 東亞 국가의 공통 고민
日 아트디렉터 하라켄야 '로컬' 주목
"문화는 그곳에 있는 고유성 그 자체"



청년들은 어떤 도시 또는 어떤 시골에서 살고 싶어 할까. 저마다의 사정이야 다르겠지만, 내가 만난 젊은 학생들의 생각을 상기해 본다. 청년들은 한번 정착하면 빠져나오기 힘든 곳에는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 의미를 둘수록 어딘가로 들어가고 나가는 유연함은 살고 싶은 도시를 정하는 데에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는 것 같다. 한 지역이 점으로 찍혀 있기보다는 지역과 지역이 선으로 연결되어 자유롭고 관대하게 서로를 환대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서 무거운 철문을 달아두고 청년을 붙잡아 두려는 정책보다는 청년이 마음껏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열린 문 같은 정책이 세워지면 좋을 것이다. 지역의 인구학적 숫자를 늘려야 하는 행정 입장에서는 주저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쉽게 들어오고 나가는 플랫폼으로서 지역이 가지는 정체성은 미래의 관광산업에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니 고려해 볼 만하다. 어쩌면 사람들 사고(思考)도 유연하게 흐르면서 지역의 혁신을 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산업 구조가 변했듯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할 수 있는 일들도 폭넓어졌다. 특히 디자인 분야도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청년 인구가 생겨나고 있다.('디자이너 세계의 기울어진 운동장', 영남일보 2023년 2월10일자)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중요한 것은 좋은 클라이언트다. 좋은 클라이언트는 어디에 있을까. 그곳은 대구일 수도, 서울일 수도 또는 해외일 수도 있다. 클라이언트와 협업하는 디자인 업무 환경은 파격적으로 유연해졌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해당 지역 안에서만 활동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청년들의 지역행은 단순한 귀농·귀촌이 아닌 전략적 선택이다. 상대적으로 부동산 임대료가 저렴하고 휴식과 일을 겸하며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 대한 고민은 산업화를 통과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무인양품 아트디렉터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하라 켄야는 지역의 풍토와 자연환경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그곳의 로컬리티(지역성)를 끌어내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는 신간 '저공비행'(안그라픽스, 2023년)에서 '유동(遊動)의 시대'를 말한다. 논과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정주' 방식은 이동수단과 통신기술로 인해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인터넷은 우리가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하라 켄야는 관광의 부가가치에 집중하며 결국 핵심은 문화의 고유성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은 지금 세계화를 향해 크게 요동치고 있다. … 이런 상황 속에서 더욱더 로컬의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세계화를 선도하는 것은 경제다. 그러므로 더욱 가치를 만들어내는 근원은 문화, 즉 지역성에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글로벌한 문화라는 것은 없다. 문화는 그곳에만 있는 고유성 그 자체다." 글로벌과 로컬이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빛나게 하는 하나의 개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것은 도시와 시골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서울만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청년이 많아진 것은 분명하다. 지역에서 가능성을 찾으려는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지자체가 지원하는 예산과 프로그램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이 선뜻 지역에 머물거나 지역행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우리 사회가 그들의 자기결정권을 빼앗아버린 것은 아닐까. 대학 선택과 일자리 선택을 자기 스스로 고민하지 않도록 만든 구조적 문제도 지적해 볼 수 있다. 서울과 지방을 이분화하고 문화의 다양성보다는 맥락 없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도시 정책도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지역에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웅변하지만 결국 사회의 모든 욕망이 서울에 응축되어 있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로컬조차 그저 유행하는 소비재쯤으로 여기면서 폼 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자신이 발 디딜 땅을 스스로 선택하고 원하는 일에 뛰어든 청년의 결단력과 패기는 더욱 소중하다. 일단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