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하동 플라이웨이 케이블카 & 이락포 트레킹, 탁 트인 하늘·산이 빚은 예술…다도해 절경도 한눈에 담는다

  • 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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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21  |  수정 2023-04-21 07:59  |  발행일 2023-04-21 제38면
남해 최고봉 금오산 정상 케이블카

1.2㎞ 산·바다 보며 걷는 '하늘길'

청정한 숲·계곡·섬 숨막히는 풍경

이순신 장군 넋 깃든 사당 이락사

충무공 순국한 바다 조망 첨망대

노량해전 현장 조국 의미 되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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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웨이 케이블카에서 본 다도해 풍경.

10시 햇살이 상쾌하다. 남해 인근 해발 60m 지점인 하부 승강장에서 출발한다. 케이블카는 날개를 펼친 듯 오른다. 허공의 하늘길을 날아서 간다. 하동 금오산 플라이웨이(Flyway) 케이블카(CABLE CAR)를 타면 느끼는 감정이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깊은 협곡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점차 바다도 그 외피를 벗는다. 광대한 골짜기 지나 이름 모를 등을 넘자, 다시 웅장한 협곡이 나타난다. 두 번째 진바등(해발 486m)을 넘어가자 금오산 정상이 보이고, 너덜지대와 청정한 숲, 태고의 적막이 휴식하는 계곡을 통과한다. 원초적인 기억과 사랑이 오전 햇빛에 반짝거린다. 공중에서 보는 산과 자연, 빛무리는 숨 막히는 신비다. 누가 이런 풍경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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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전망대에서 본 산야 풍경.

너덜지대 옆 해발 590m 지점, 봉수대와 석굴암이 있다. 이름에 비해 초라하다. 가지 능선도 없는, 원뿔형의 금오산은 일대를 지배하는 부족의 족장처럼 위엄이 넘친다. 캐빈은 허공을 가른다. 고도차가 심한 상부 승강장에 도착한다. 상부 승강장은 4층 규모로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남해와 서해 해안을 통틀어 가장 높다는 금오산(849m) 9분 능선의 옥상 전망대에 선다. 삼면이 조망되는 오션뷰는 대 파노라마이다. 과연 지금까지 이렇게 광대하고 거창한 섬과 바다 장관을 본 적이 없다. 오 마이 갓. 긴 시간, 켜켜이 숨어 있던 비경들이 눈에 불을 지른다. 멀리 운해 사이로 언뜻언뜻 흐르는 섬과 산 그리고 바다. 이건 몽환이다. 이 위대한 자연의 경관 앞에 나는 몇 번이나 주기도문을 외워야 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장엄한 풍경을 무슨 말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옆, 집 와이어 출발시설을 보면서 바닥이 강화유리로 투명한 스카이 워크로 간다. 돌출되어 있는 스카이 워크를 걸으면, 몸이 허공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뒤쪽 금오산 정상을 제외하고 삼면과 상하 공중까지 다 조망된다. 이따금 내 몸도 시나브로 허공의 일부가 된다. 어머니의 마음 같은 저 허공, 찬란한 풍경, 몸서리치는 실존의 시간. 끝없이 가슴에 스며들던 허무의 정체가 저 허공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또, 허무가 실존의 대척점이었다는 것도 애면글면 알게 된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도 받고 천국에 가듯이.

동으로 삼천포 대교, 창선도, 무도, 목련도, 대방산이 바다에서 꽃으로 핀다. 정말 섬이 꽃이 되는 순간이다. 남으로 남해 금산, 호구산, 녹두산과 가까이 노량대교, 망운산, 대도, 영취산이 크레파스 그림을 그린다. 뿌연 빛과 짙은 해무가 멀리 아득히 곰비임비 추상화도 완성한다. 눈이 아플 지경이다. 서쪽으로는 묘도, 그 옆 이순신 대교, 여수화학단지, 광양제철, 하동화력, 대송산업단지가 한국의 국력을 자랑하며 근육을 뽐낸다. 삼면을 이리저리 휘둘러 본다. 정말 엄청스럽다. 하늘과 바다와 섬의 예술. 그리고 무한 질주로 달려온 우리의 번영. 나는 몇 번이나 가빠지는 숨을 추슬러야 했다. 지금 여기가 진짜 현실 맞나. 영화는 꿈과 환상의 세계라고 하지만, 무슨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나는 나의 살을 꼬집고 비틀어서 현실의 감각을 되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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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전사지 관음포 바다를 보는 첨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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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해전을 끝낸 관음포 앞바다.

금오산 하늘길로 걷는다. 1.2㎞ 약 30분 소요된다. 하늘 우물에 도착한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우리의 하늘·바다·섬 그리고 산과 평야. 무릇 인간은 풍경의 부분이다. 눈에 익숙한 자연과 길은 우리가 공유하는 미지와 경이(驚異)이다. 지리산 전망대에서 잠시 멈춘다. 북사면 도로와 가물가물 스카이 라인을 그리는 지리산 능선. 가장 우측 천왕봉(1천915m)에서 공제선 따라가면 반야봉, 노고단, 종석대까지 주능선이 마스카라를 만든다. 약 40㎞다. 지금까지 국토를 위해 기도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경건한 지금이 국토에 예배하는 순간일 것이다. 이제 북으로 내륙의 풍경을 감상한다. 스카이 브리지를 지나고, 사랑 바위도 살핀다. 어디에 가더라도 사랑은 있다. 저 신(神)의 거주지인 허공에도 사랑의 노랫말이 있다. 우리 모두 허공에서 왔다가 허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일출 전망대와 소망의 돌 언덕을 거쳐 상부 승강장에 도착한다. 아직도 길고 먼 여정, 바람이 불면 내 안에서 울리는 풍경소리 따라 걸었던 금오산 하늘길. 그 환상의 길에서 새로운 환상을 만나고 만들던 그 꿈과 현실의 시간이 기억에 영원히 저장된다. 하부 승강장으로 내려온다. 차에 올라 노량대교 건너 이순신 순국공원으로 간다. 거긴 노량해전 최후의 장소 관음포를 볼 수 있는 첨망대(瞻望臺)가 있다.

이락사(李落祠) 가는 길은 푸른 이끼가 듬성듬성한 보도였다. 돌계단과 황금빛 노송이 햇살을 받아 화색이 돈다. 이락사 현판은 대성운해(大星隕海)다. 즉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진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이순신 제독이 큰 별이고, 그분이 관음포 바다에서 전사, 즉 떨어졌다 하여 사당 명칭이 이락사이다. 사당은 고요하나 엄숙하고, 셀 수 없이 방문한 참배객들의 정제된 정신이 곳곳에 서려 있는 것 같다. 이락사를 나와 이순신 제독이 전사한 관음포 바다를 보기 위해 첨망대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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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실 때 남긴 말.

임진왜란 정유재란 7년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참상을 남긴 비극적인 역사였다. 1598년 8월18일, 조선·일본·명의 삼국을 불지옥 같은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성에서 62세로 숨을 거두었다. 히데요시는 조선에 출병한 왜군의 철병을 지시하고, 이러한 유작시를 남겼다. "이슬로 와서 이슬로서 떠나는 내 몸이여, 나니와(오사카)의 영화도 꿈속의 꿈이런가." 원숭이를 닮았다는 걸물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조선에서 왜군의 철수가 시작되었다. 그중 순천 왜교성에 고립된 소서행장(小西行長)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왜장 도진의홍 등의 함선 500여 척과 이순신 제독이 지휘하는 조명(朝明) 수군 150여 척의 처절했던 해전이 노량해전이다. 이전에 왜의 철군이 공식화되자, 그사이 무사히 돌아가려고 하는 왜장 코니시와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과의 밀약과 이순신의 완강한 왜적 격멸 의지가 맞물려 숱한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진린이 마음을 바꾸어 왜적을 공격하기로 결심한 것은 순전히 이순신 제독의 인간적인 위대성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598년 음력 11월19일(양력 12월16일) 한밤중 어둠을 이용해 도주하는 500여 척 왜의 대함대와 이를 격침하고자 하는 조명 수군 150여 척이 하동 노량 바다에서 사력을 다하여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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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불패의 전승 제독 이순신 함대와 명나라 제독 진린 함대의 용맹한 공격에 왜 함대는 패퇴하고, 왜의 전선은 수도 없이 바다 밑으로 사라져갔다. 필사적으로 도주하던 왜 함대가 너무 급해 막다른 골목인 줄 모르고 관음포 앞바다로 들어갔다. 이순신은 조선 수군에게 추격 정지 명령을 내렸다. 궁지에 몰린 왜적의 반격이 거세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공(功)을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명의 수군은 왜적을 따라 관음포 바다로 들어갔다. 과연 왜적의 반격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명의 부제독 등자룡의 전선이 불타고, 등자룡은 전사했다. 이제 왜 함대가 명의 제독 진린의 기함을 포위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이순신 제독이 진린을 구하려 나아가다 어찌할꼬, 겨드랑이에 흉탄을 맞았다. 이순신 제독이 숨을 거두면서 한 말은 "지금 전쟁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였다. 큰 별은 그렇게 관음포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왜적은 대패하고 여수해협으로 도망간 배는 겨우 50여 척에 불과했다. 전대미문의 잔혹했던 7년 왜란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첨망대를 돌아 나오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니 식은땀이 났다. 역사와 조국 앞에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을 했는가.

글=김찬일<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유판도 여행사진작가

☞문의: 하동 케이블카 (055)883- 2000

☞내비주소 : 경남 하동군 금남면 경충로 461- 7

☞트레킹 코스 : 금오산 하늘길 & 이락포 첨망대 가는 길

☞인근의 볼거리: 지리산 불일암, 청학동 삼성궁, 화개장터 십리벚꽃, 평사리 최참판댁, 쌍계사, 남해 충렬사, 남해 유배 문학관, 다랭이 마을, 독일 마을, 금산과 보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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