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진달래꽃 붉은 비슬벌(琵瑟伐) 참꽃축제

  • 권영시 비슬산문화유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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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9 16:28  |  수정 2023-04-20 08:30  |  발행일 2023-04-24 제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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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시 비슬산문화연구소장

화사한 봄날 햇살이 진달래꽃 진홍 물결 이끈 뒤미처 온갖 나무에 새잎이 돋는다. 이즈음 산새들이 둥지 틀고 생기발랄한 지저귐에 귀가 즐겁다. 전국 산천을 가리지 않고 봄이면 어김없이 나신(裸身)에도 일찍이 꽃망울 터트리는 진달래, 누구든 어린 시절 추억과 그리운 고향의 향수라면 진달래꽃이 아닌가 싶다. 소월의 시로 유명한 '진달래꽃' 또한 누구라도 학창 시절부터 나이 듦에도 잊히지 않는 시로 또렷하게 남아 있으리라.

1925년 12월26일 매문사(賣文社)는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을 발간한다. 2011년 2월25일 문화재청은 이 시집을 시인 김소월이 생전에 발간한 초판본 시집으로 토속적, 전통적 정서를 절제된 가락 속에 담은 시 작품을 많이 수록한 점을 고려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한다.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은 한국 근대 문학 작품 중 최초로 지정된 문화재가 된다.

전국 어디 없이 산천의 높낮이를 가리지 않는, 땅이 비옥하거나 척박한 곳을 가리지 않는, 흙 한 톨이라도 움켜잡을 수 있다면야 암 벼랑도 감수하며 정착하는, 이런 진달래꽃이야말로 우리의 정감 어린 꽃이요, 우리 산천의 토속 꽃이자,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적 꽃이다.

하늘 일렁이듯 해발 높은 비슬벌(琵瑟伐)의 진달래꽃은 어떠한가, 일부 산악인만 오르내리고 자연휴양림이란 용어가 생소하던 1992년, 비슬산자연휴양림 조성을 기획하고 산림청에 신청한 자연휴양림을 이듬해 지정받았다.

휴양림 설계와 조성을 도맡아 추진하면서 대견봉을 오르내리다가 광활한 면적에서 진달래 군락지를 발견하고 경탄한 나머지 숨이 멎을 뻔했다. 당장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북쪽에 자리한 '대구지도센터'로 나섰다. 1/50,000 위치도를 구입하고 다시 정상에 올라 연필로 윤곽적인 진달래 분포 테두리를 그었다. 공교롭게도 4각에 엇비슷했고, 축척을 대비한 길이는 가로세로 각각 1km 정도로 산출한 면적은 100만㎡(100ha)였다. 평수로 환산한 면적은 30만평, 이로써 현재의 참꽃 면적이 굳어졌다.

30만평에 진달래가 분포한 까닭도 찾아냈다. 1976년 유가면 양리 굿밭골에서 한 농부가 논두렁을 소각하다가 산5번지인 비슬산 군유림까지 산불이 번졌다. 그 뒤로 모 언론사 신 모 기자가 군유 임야를 대부받아 더덕 종자를 산파했다. 하지만 찻길도 없고 오가는 거리가 워낙 멀어 그만 경작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20여 년 자연발생적으로 피복된 참나무류와 소나무가 부분부분 소생하고 하층식생으로 철쭉, 조록싸리, 미역줄나무도 함께 자랐지만 진달래가 주종을 이루었다.

이에 1996년 8월26일 휴양림 개장을 앞둔 2월1일 냉큼 '비슬산 진달래꽃축제 유치계획서'를 기획했다. 어렵사리 결재를 받고 4월24일부터 당시 양시영 군수님과 개화 관찰을 위해 등정했고, 그때 진달래 말고 순수하고 토속적인 또 다른 이름을 물었다. 헉헉거리며 뒤따르던 필자와 이덕휘 문화공보실장이 "어릴 적에는 참꽃이라 불렀죠"고 하자, "그럼 참꽃제가 어떠냐"는 말에 "예"라고 했고, 군수님은 "됐다. 참꽃으로 하자, 그럼 참꽃축제다"며 현장에서 명명했다. 이로써 1997년 5월 4일 달성 번영을 기약하는 축제 하나에 꽃불을 지핀 비슬산과 달성은 연중 붉다.

권영시 비슬산문화유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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