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초로인생

  • 김단희 국악인·서도소리꾼
  • |
  • 입력 2023-04-26  |  수정 2023-04-26 07:59  |  발행일 2023-04-26 제16면

[문화산책] 초로인생
김단희 (국악인·서도소리꾼)

매주 월요일 정연종 작가의 '한양 가는 길'이라는 벽화를 마주한다. 소리 공부를 하고 집으로 내려올 때 지하철에서 항상 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지나쳐 기차를 타고 다시 대구로 내려오는 길에는 좋아하는 책과 음악을 읽고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1시간40분가량 기차에 몸을 싣고 있는 시간은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가끔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삶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자문자답을 한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모방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던 나는 실용음악을 전공하며 가수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다양한 음악을 접했고, 전설적인 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연습하며 가사를 단시간에 외우기에 도전하는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실용음악 대학 입시는 500대 1에 육박해 '하늘의 별 따기'라 했는데, 레슨 선생님의 권유로 유사한 전공이 생겼다는 소식에 나는 돌연 국악과로 진학했다. 첫 스승님을 만나 민요를 사사하며 10년이 흐른 지금은 민요 소리꾼의 길을 걷고 있다. 입으로 전하여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구전심수'의 민요 교육방식은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잘했던 내게는 안성맞춤인 교육법이었고 덕분에 장르는 달라졌으나 노래하는 사람, 가수의 꿈을 이룬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순수예술은 어린 시절부터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만큼 자신을 갈고닦는 오랜 수련을 거쳐야 하기에 늦게 시작하면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일찍 시작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서 튀어나오는 자격지심과 경쟁심리는 지금도 나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얼마 전 언제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모교 교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은 작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서도좌창(앉아서 부르는 서도소리) 중 '초로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이 태양을 맞으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인생이 덧없이 흘러가는 것을 비유한 노래이다. "아서라 초로인생이야 한 번 가면은 만수장림(큰 숲)에 뜬 구름이로다. 살아 생전에 먹고 쓰고 할 일을 하면서 잘 살아봅시다." 모두가 같은 삶을 살지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소신껏 살아가는 하루가 모여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서도소리'라는 만수장림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며 이 길은 끝이 없는 여정인 것을 확신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디로 향하는가. 독자분들에게 되물으며 두 달간 걸었던 나의 산책을 마친다.

김단희<국악인·서도소리꾼>

기자 이미지

김단희 국악인·서도소리꾼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