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몸짓 이야기] 리추얼문화: 의례를 위한 몸짓에 대하여

  • 조성진 마임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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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5  |  수정 2023-05-05 08:09  |  발행일 2023-05-05 제38면
MZ세대, 나를 성장시키는 습관 '리추얼 라이프'를 산다

[조성진의 몸짓 이야기] 리추얼문화: 의례를 위한 몸짓에 대하여
〈게티이미지뱅크〉
[조성진의 몸짓 이야기] 리추얼문화: 의례를 위한 몸짓에 대하여
조성진 (마임이스트)

"혹시 요즘 MZ세대를 특징짓는 리추얼 라이프(Ritual Life)라는 말 아세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마임강습에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나에게 후배가 슬며시 질문을 던졌다. 리추얼(ritual)은 내게 익숙한 말이다. 신학과 민속학을 조금씩 맛본 내게 리추얼은 종교적인 의례, 즉 제의를 뜻하는 것이지만 규칙적으로 또는 의례적으로 행하는 일이라는 뜻도 있다. 외래어치고는 낯선 말에 속할 텐데 젊은 층에 유행이라니 의아했다. 아니 사실은 굉장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일단 대강의 의미를 알아보았다.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 의례를 뜻하는 '리추얼(Ritual)'에 일상을 뜻하는 '라이프(Life)'를 더했으니 일시적으로 행하는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아닌 전반적인 삶의 태도나 노력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갓생'이라고도 한단다. 갓생은 MZ세대가 신(God)을 뜻하는 데 사용하는 접두어 '갓'과 '인생'을 합쳐 '모범적이고 알찬 인생'을 의미한다. 아, MZ세대가 자신을 돌보기 시작했구나! 개인적인 행복을 중시하고 소비적인 특징을 이르는 YOLO나 성공이나 부를 뽐내고 과시한다는 Flex의 시간을 보내고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양육하기 시작했구나!

소위 리추얼플랫폼 가운데 한 곳을 방문했다. 다음은 플랫폼을 소개하는 첫 문장이다.

○○는 '내면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마음성장 플랫폼'입니다.

스펙을 쌓는 일과는 다르다. 변화와 성장을 도모한다. 생활의 가치가 외부를 향하지 않고 내부 곧 나를 향해 있다. 종교적인 구도나 수행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MZ세대의 탈종교 경향은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에 대한 대체재를 찾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학을 창시한 수운 선생은 보이지 않는 귀신에 제사하지 말고 한울님을 모신 자신을 향하여 제사를 지내라 했다. 이른바 '향아설위(向我設位)'다. 종교적 제의로서의 리추얼과 일상을 위한 리추얼의 경계가 사라지고, 제도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각자가 주체가 되어 삶의 변화와 성장을 도모하는 문명의 싹을 보는 듯하다.

리추얼이라 해서 이전과는 다른 신박한 행위나 프로그램을 하는 게 아니다. 매일 일기를 쓰거나 운동을 하고 독서를 하는 등 기존에 자신의 성장을 위해 하던 소박한 일도 포함된다. 이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러한 자신과의 약속과 실행과정을 다른 이들과 공유한다는 것이다. 사실 난 MZ세대가 어떤 식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는지 궁금했다. 이들은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매우 구체적인 연대를 지향한다. 그들은 각자가 세상의 중심이지만 그 중심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서로 각각의 중심을 지지해 주는 연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작심삼일이 MZ세대가 이 시대를 살아가며 터득한 인간 이해다.

◆제사와 예배 그리고 국민의례에 익숙한 이전 세대

이렇게 저마다의 다양한 리추얼에 익숙한 세대가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리추얼을 견딜 수 있을까. MZ세대는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에 시간을 쓰거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따라서 제사와 예배 그리고 국민의례에 익숙한 세대의 리추얼이 위협 받고 있다. 제사를 간소하게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 예배를 재미있게 한다고 가나안 신자(신앙은 있지만 예배에 안 나가는 신자)가 돌아오지 않는다. 광복 이후 산업화를 경험한 이전 세대가 지닌 리추얼의 문제는 자신의 욕망과 그가 속한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이중성에 있다. 한국의 보수는 권위적인 정부나 지도자를 원하지만 동시에 시장의 자유를 확보하려 애쓴다. 극단적인 집단주의와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공존한다. 그들의 집단적인 리추얼은 개인의 마음을 담지 못한다. 규범에 의한 엄숙함만이 요구될 뿐이다. 그러한 기성세대의 이중성은 개인과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가 일치하는 MZ세대의 리추얼 라이프와 선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삶 변화 추구하는 일상의 몸짓 젊은 층 유행
일기쓰기·운동·독서 소박한 실천에 만족감
플랫폼 통해 서로 지지하며 커뮤니티 활동

기성세대, 이념·사상 같은 말놀음서 벗어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최소한 몸짓으로 소통
MZ세대, 리추얼 경험 확장 공동체에 기여
다음 세대에 자발적 삶 안내하는 멘토 될 것



한편 대가족의 경험이 없고, 집단적인 의례의 경험이 부족한 MZ세대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참여의 기회를 얻기 힘들 뿐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가늠하기도 어려워진다. 충분할지는 모르지만 미디어 또는 붉은악마 같은 광범위한 자발적인 축제, 연예인이나 정치인에 대한 팬덤 같은 형태가 그것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집단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전 세대의 거대한 불안과 혼자서는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MZ세대의 자각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MZ세대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개인의 노력을 누군가가 굳이 리추얼이라고 부른 것은 그 의례의 몸짓이 어떠한 형태이건 커뮤니티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너와 나의 몸이 집단과 개인을 하나로 만드는 제단이다

이제 이전 세대의 리추얼이 지닌 가치의 이중성과 MZ세대의 축소된 리추얼의 한계를 풀어줄 길은 의례의 본질을 다시 묻는 것이다. 모든 종교에서 의례는 신앙의 내용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doing something). 언젠가부터 현대예술용어인 퍼포먼스가 기업이나 정치 영역에도 자주 등장한다. 퍼포먼스는 실제를 반영하되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몸짓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한번 해보는 것'이다. 말이나 글이 우선적인 권위를 갖는 시대가 가고 있다. 이념이나 사상, 경전 같은 말의 선언적인 이중성에 넌덜머리가 난 새로운 세대는 퍼포먼스를 사랑한다. '영웅'과 같은 뮤지컬에 관객으로 참여하며 몸짓에 담긴 역사를 만나 그 숭고함에 경의를 표한다. 숭고함이야말로 거대한 것 앞에서 작은 존재가 갖는 당당함 아닌가. 예술은 작은 것 안에 거대함을 담는 기술이다. 벽처럼 느껴지는 기성의 질서와 권위 앞에서 MZ세대는 작은 일상의 몸짓에 마음을 모으는 리추얼을 서로 지지하며 어떤 숭고함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올해의 3·1절 기념행사는 서로 다른 경험과 지향을 갖는 세대를 아우르는 어떠한 퍼포먼스도 없이 권위적이고 정치적인 언사만이 무대를 차지했다. 이전 세대는 허망한 말놀음에서 몸의 마당으로 돌아와 다음 세대를 만나야 한다. 소비와 자기 과시의 길에서 돌아와 소박한 일상의 몸짓으로 변화와 성장을 꾀하기 시작한 MZ세대는 그렇게 일상의 단단함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감동적인 퍼포먼스가 있는 리추얼을 디자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약자를 위한 약자의 리추얼

MZ세대는 자신의 변화와 성장뿐 아니라 스타나 정치인에 대해서도 마치 부모와 같은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에 대해서는 애정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타의 성장 과정에 참여해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목표를 공유하고 그 성취를 돕는다. 나는 그것을 팬덤 리추얼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이 팬덤 리추얼은 경배가 아닌 보살핌이다. 그러니 MZ세대의 리추얼 라이프는 스스로를 돌봄과 동시에 자신들이 아끼는 존재를 보살피는 모성적인 성격을 지닌다. 미생이 미숙아를 돌보는 약자를 위한 약자의 리추얼인 것이다. 그것은 정치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치 자신의 선택으로 입양한 아이를 보살피듯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식의 성원을 보낸다. 우리를 이끌어주는 지도자라는 개념은 일찌감치 폐기했다. 정치인은 우리의 생각을 대변하는 대리인이다.

◆자발적이고도 자유로운 삶을 안내하는 멘토 세대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경험한 붉은악마는 이후의 집단적인 리추얼의 원형(prototype)이 될 것이다. 붉은악마는 자발적이며 뜨겁고 자유로운 격조를 창조해냈다. 우리나라에 외국 정상이 방문할 때면 으레 연도에 늘어서서 태극기를 흔들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국가의 행사에 동원되는 것이 익숙한 그 세대는 오늘에 와서도 국가가 불러 주지 않는 것에 허전함을 느낀다. 이제 MZ세대는 자신의 일상을 자발적인 리추얼로 채우고 자신의 직장이나 창조적인 작업에 그 경험을 반영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다음 세대에게 자발적이고도 자유로운 삶을 안내하는 멘토 세대가 될 것이다.

마임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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