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아름다움의 이면을 볼 수 있기를

  • 안효섭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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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2  |  수정 2023-05-02 08:19  |  발행일 2023-05-02 제17면

[문화산책] 아름다움의 이면을 볼 수 있기를
안효섭〈큐레이터〉

나는 도시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도시가 주는 야경과 멋진 건물들의 대칭성이 주는 안정감도 좋아한다. 그러나 문득 '너무 낭만적이게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세상을 둘러보면 온통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것들로 가득하고, 삶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화려한 야경 뒤에 위치한 치열한 경쟁으로 세상은 조용할 날이 없다. 이런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사람은 유약해 보인다. "세상이 이렇게나 힘든데 무슨 아름다움이란 말인가"라는 핀잔을 듣기 좋다. 그러나 전쟁과 다툼 속에서도 삶은 진행되고, 아름다움은 불필요해 보이지만 이곳저곳에 스며들어 존재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삶의 반짝임을 인지하게 되듯, 추함이 가득한 세상일수록 아름다움은 더욱 간절해지고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추함과 아름다움은 반대편에 있지만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깨끗한 건물이 주는 아름다움의 뒤편에는 무엇이 있었나. 청소 노동자가 휴게실도 없이 화장실에서 식사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콘크리트 하천에서도 직선이 주는 힘, 대칭이 주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콘크리트 하천은 상류 마을의 홍수 위험을 하류 마을에 전가하며 생태계를 파괴한다. 어떤 추함은 아름다움을 퇴폐적으로 사용해서 생기기도 하고, 어떤 아름다움은 눈을 현혹해 추함을 가리기도 한다. 진실된 아름다움을 위해 우리는 아름다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의 이면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 뒤의 이면을 살펴보는 행위는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나의 삶이 지쳐서 잘 안 보일 수도 있다. 힘들고 헛수고인 것만 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수고를 감수하는 것은 고통받았거나, 지금 고통받고 있거나, 앞으로 고통받을 수도 있는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한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조차도 아름다움의 그늘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늘에 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 등장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과 상상력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한다. "와, 예쁘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와, 예쁘다. 그런데 저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 저렇게 만든 결과로 ~한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진실된 아름다움에 다가가기 위한 이런 노력이 쌓이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성숙해지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느라 썼던 에너지가 그리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은 이어지고, 아름다움은 곳곳에서 우리를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안효섭〈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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