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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
5월5일은 우리나라 어린이날이다. '우리나라 어린이날'이라고 말하는 것은 국가마다 어린이날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와 일본 어린이날이 둘 다 5월5일로 같다는 점은 좀 기묘하다. 우리나라가 어린이날을 제정한 것이 일제 잔재란 말인가?
물론 아니다. 우리나라 어린이날은 방정환 등 색동회 동인들이 처음 만들었다. 1922년 어린이날 제정 선포와 1923년 아동 잡지 '어린이날' 창간은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자는 데 근본 취지를 둔 '어린이 운동'이었다.
당시는 기미독립선언 직후였다. 즉 어린이운동은 민족의식 고취를 이면에 숨긴 독립운동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제는 1937년 우리나라 어린이날 행사를 중단시켰다.
본디 우리나라에는 '어린이'라는 낱말 자체가 없었다. 어린 사람을 그저 미성년으로만 여기는 성리학적 인식이 낳은 결과였다. 방정환은 존칭 의미의 접미사 '이'를 '어린' 뒤에 붙임으로써 어린이의 인격에 대한 존중의식이 저절로 낱말 속에 담기도록 했다.
예수는 "나를 받들듯이 어린이를 받드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서 "너희들이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처럼 되지 않고서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가르쳤다. 벌써 2000년쯤 된 아득한 옛날 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용 교과서 '동몽선습'이 나온 1453년은 까마득한 뒷일이다. 중국 '소학'도 1187년생으로 한참 늦둥이이다. 그렇게 늦은 것도 사회발전의 걸림돌이었지만, '장유유서'를 나이 든 사람과 어린 사람 사이의 상호존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위계질서로만 곡해해 여러 장애를 일으킨 점은 더욱 문제였다.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며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어릴 때에도, 어른인 지금도) 내 가슴은 뛴다. 늙어서도 뛸 것인데,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 목숨을 거두소서"라고 노래했다. 예수의 말씀과 같은 인식이다.
불교에서도 '천진불'이라 했다. 천진불은 천진난만의 어원으로, 하늘이 사람으로 현신할 때 어린이로 나타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중세의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두산백과) 아우구스티누스는 "말도 못 하는 어린 아기가 질투를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하다"고 했다. 왜 중세를 '암흑시대'로 평가하는지 그 까닭을 짐작하게 해주는 발언인 듯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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