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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변호사 |
사람의 신념은 물론 국가정책도 바뀔 수 있다. 철석같이 믿었더라도 그 전제가 달라졌다면 바꾸어야 옳다. 반면 생각을 달리할 이유가 없는데도 어제와 다른 말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품성은 의심받게 마련이다. "100년 전의 일을 빌미로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고 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후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졌다. 보도에 대해 국민의힘 대변인과 대통령실은 '국익'을 들먹이면서 '주어가 없다'거나 '주어는 일본'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는데 여기까지는 익히 봐왔던 모습이다. 그러나 기세등등하던 대한민국의 '국익'은 꼬리를 내리고 전선은 무너졌는데 그 기자(Michelle Ye Hee Lee)가 공개한 인터뷰 원문에 있는 달랑 한 단어 때문이다. 반격을 기대하던 국민은 "역시 미국 신문은 MBC와는 다르구나"라면서 입맛만 다셨다.
대통령도 사람이니 완벽할 수 없고 실수할 수 있다. 일전 우리 홍준표 대구시장님께서 정치 초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이 응당 감수할 일이라고 고상하게 변론하셨듯이, 중임을 금지하는 우리 헌법으로 뽑힌 모든 대통령은 그 일이 처음이니 처음부터 잘하기 쉽지 않다. 일본만 등장하면 비분강개하는 우리의 갑남을녀는 저자세로 비치는 대통령의 태도에 입에 거품을 물고 있지만,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말 바꾸기와 듣고도 늘 통역이 필요한 모호함에 있다. "일본에 더 이상 사과를 요구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이고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여 한층 더 국익을 도모하겠다"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겠다. 그러려면 솔직해야 한다. "그것이 내 신념이고 정책이다. 숙고하여 그 길로 정했으니 믿고 지켜봐 달라"고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말을 내뱉은 후에 상황이 나빠지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거나 의도가 그게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흐리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고 자신의 대일본 전략이 비루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없다.
아랫사람이 잘못을 했을 때 따끔하게 혼내고 다시는 그러지 말 것을 다짐하면 된다. 그러나 집안 어른이 엉뚱한 일을 벌이면서 식언을 계속하면 식구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하인과 이웃이 수군대는 계면쩍은 상황임에도 집안 아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하고, 한마디로 가문이 우세스럽게 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거나, 큰길을 행진하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쳐다봐야 하는 애들 동화 같은 장면이 실제 상황이라는 것, 이게 민망한 거다. 실수는 고치면 된다지만 같은 짓을 반복하면 과실이 아니라 고의라며 원래 그런 거니 기대하지 말라고, 오십 넘은 사람은 고쳐 쓰는 것도 아니라는 실없는 농담에 맥없이 웃기만 할 뿐 달리 대꾸할 말이 없다.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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