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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
요사이 포항 도심에는 시민의 숙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포항 내항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동빈대교 건설공사가 착착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다리가 완공되면 포항의 명소인 송도 해변과 영일대 해변이 지척으로 연결되어 심지어 걸어서도 쉽게 오갈 수 있게 된다. 특히 송도 쪽에 조성된 커다란 해안 송림을 영일대 쪽의 시민과 관광객이 즐기게 되는 것은 포항 도심의 새로운 매력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설렘을 가지고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마음 한쪽에는 오래 묻어 두었던 아쉬움 하나가 피어오른다. 20년 전 포항 사회 이곳저곳에 제안했던 구겐하임미술관 프로젝트 생각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그 이야기를 해두고 싶다.
지방분권이 국정 목표였던 노무현 정부 때 포항에는 지역혁신협의회가 조직되어 공론장으로 기능했고, 지방분권운동에 열심이던 나도 위원으로 참여했다. 핵심 의제는 '포스트-포스코 시대에 대비한 첨단과학도시구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였고, 포항시를 이끌던 정장식 시장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널리 찾았다. 그즈음 나는 개인 연구차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국제법사회학연구소에 갔다가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찾은 일이 있었다. 빌바오는 백여 년 전 유럽을 대표하는 철강 도시로 번영했으나 철강산업의 쇠락 이후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다가 20세기 말부터 국제금융도시로의 탈바꿈에 성공하여 다시금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는데, 그 변혁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바로 구겐하임미술관이었다.
유명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은 각도에 따라 수많은 모습이 담긴 눈부신 건물이다. 금빛과 은빛이 경쟁하는 듯한 이 인상적인 건물은 주변의 다리 및 강변도로와 어우러져 빌바오 도심의 버려진 선창가를 완벽하게 되살렸다. 이는 랜드마크 건물 하나가 도시 이미지를 변혁하여 새로운 활력과 전망을 찾아낸 살아있는 증거였다.
포항에 돌아온 나는 지역혁신협의회 위원들과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의 사례를 공유했다. 당시 포항 사회에는 송도의 해안 송림에 있던 고등학교가 이전한 뒤 부지 활용을 두고 논란이 있었는데, 고급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이 탐탁지 않은 시민들은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포스코 공장의 맞은편 송림 한복판에 동아시아 최초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빌바오의 사례를 볼 때, 철강도시 포항의 역사를 기념하면서 글로벌 도시의 미래를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도 더 나은 랜드마크를 찾기 어려웠다.
얼마 뒤 나는 다른 위원 한 분과 함께 구겐하임미술관 프로젝트를 제안하러 지금은 없어진 옛 포항시청의 낡은 시장실을 찾았다. 정장식 시장은 빌바오 사례를 듣자마자 대뜸 고등학교 시절부터 빌바오에 관심이 많았다고 반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예정 시간을 훨씬 넘긴 면담에서 시장의 주된 반응은 첨단과학도시구상을 추진하는 동안 자신이 겪은 어려움에 대한 격정 토로였다. 이후 지역구 국회의원을 포함하여 포항 사회의 이곳저곳에 구겐하임미술관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동안 신기하게도 이와 흡사한 모습이 재연되곤 했다.
결과적으로 구겐하임미술관 프로젝트는 포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문제의 장소에는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나중에 임기를 마친 정장식 시장은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 잠시 적을 둔 적이 있었는데, 캠퍼스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 프로젝트를 추진하지 못한 것에 관하여 미안함을 표하곤 했다. 동빈대교가 완성되면, 그 다리를 걸어 송도 쪽으로 건너가면서 나는 구겐하임미술관 프로젝트와 함께 소천하신 정장식 시장의 얼굴을 아마도 떠올리게 될 것 같다.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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