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술관 본업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 이중희 한국근현대미술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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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0  |  수정 2023-05-10 09:01  |  발행일 2023-05-10 제23면

[기고] 미술관 본업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중희(한국근현대미술 연구소장)

요즘 대구미술관장 선임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사실 대구미술관은 2011년 개관 이후 바람 잘 날 없이 늘 잡음이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근본 문제를 처음부터 안고 출발한 데다 그후로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었던 탓이다. 핵심은 미술관 본업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침 필자는 이전에 관장 공모에 응모한 일이 있어 미술관 운영의 근본 문제를 정확히 직시하고 있다.

"미술사를 전공한 고매한 학자분이 미술 전시 전문 자리에는 왜 응모하셨습니까. 번지수 잘못 찾으신 것 같은데요."
대구시의회 의장 같은 낯선 분야의 인사들이 면접관으로 나와 대뜸 하는 질문이다. 너무나 황당하여 반문했다.

"미술관에서는 작품을 주먹구구로 골라서 전시하고 아무렇게나 해설합니까. 이인성이 위대한 작가라고 누가,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미술관 본업이 '작품전시 전문기관'이라는 문화 후진국적인 아마추어 인식이 10여 년간 계속되고 있다. 미술관 업무에 대한 문화 선진국의 기본 인식은 상식적으로 알려진 내용인데도 말이다. 미술관 본업은 정확히 '미술 연구 전문기관'이다.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우주보다 더 넓은 예술이란 창작 세계를 담은 수많은 작품을 역사적으로 훑어가면서 분석하고 해석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작품이나 작가를 뽑아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정녕 미술관에서 하는 본업이 아니던가. 그 업무란 완전히 미술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진행하는 연구영역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전시는 결국 그러한 연구 결과물을 펼쳐 놓고 해설하는 마지막 마무리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요즘 전시 작업은 디스플레이 전문업체에 의뢰해 처리한다. 미술관을 겉으로만 보면 전시기관으로 착각하게 되지만, 실제 근무내용은 100% 미술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무하는 직원도 모두 미술사학을 전공한 학예연구원(Curator)이다.

예술 선진국에서는 큐레이터를 뽑는 데도 학위논문이나 연구물만 본다. 관장도 미술사학의 연구능력 한 가지만 보고 정중히 초빙한다. 미술관 근무경력은 아예 무시한다. 그들의 전공 분야는 미술사학이다. 그러니 학술연구단체인 '미술사학회'의 회원 절대 다수를 미술관 학예원들이 차지하고 있고 눈부시게 연구, 토론한다. 연구실적이 많은 사람이 관장 직위까지 오르거나 혹은 교수직으로 옮겨 간다. 이것이 문화 선진국의 보편적인 미술관 문화로 정착돼 있다.

그럼에도 유독 대구시는 개관 이래 12년간 미술관에서 하는 일을 본질도 모른 채 겉껍질만 보고 전시 전문기관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명색이 대구시라는 공공기관에서 이 얼마나 황당한 예술행정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구미술관장 자리가 외지에서 거주하고 있는 미술관 근무경력자들의 놀이터가 되는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거기에다 덧붙일 것이 있다. 대구의 미술 수준은 국내 최고의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는 만큼 높다. 일제강점기엔 미술·문학·음악·사진 등 4개 분야 예술의 1번지였다. 우리말과 문화 모두 빼앗긴 상황에서도 민족혼만은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예술 속에다 민족혼을 담으려 했다. 당시 지식인 모두가 예술 속으로 들어가 민족혼을 지키려는 제2의 독립운동을 예술을 통해 일으켰다. 그 결과 대구는 국내 최고로 알맹이 있는 예술 지역이 됐다. 그러한 예술 도시 대구의 미술 가치를 오늘날 우리 스스로라도 지켜야 한다는 주체적 인식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대구시 문화행정가들에게는 요구된다고 본다. 이중희(한국근현대미술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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