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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섭 (큐레이터) |
아트페어에 나가보면 가끔 극사실적인 그림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잘 그린 것은 알겠지만, 잘 그렸다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식이다. 극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는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데 수백 시간을 소비한다. 그들은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색을 쌓아 올리는데, 이러한 작업은 색과 빛, 그림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이러한 작업은 재료를 사용해 내는 기술과 세부적인 것까지 표현해 내고자 하는 인내심이 없어도 역시나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탄생한 결과물은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감탄을 안겨준다.
극사실적인 그림은 보는 이의 감정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 극사실적인 그림들은 주로 일상적인 사물을 다루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평소 경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직물의 질감이든, 빛이 표면에서 반사되는 방식이든 세부적인 부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일상물들의 질감과 특성을 강조하고 부각함으로써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그림과 연결되도록 하는 친밀감을 만들어낸다. 그 친밀감을 바탕으로 기쁨과 향수, 슬픔과 사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적 반응이 이어질 수 있다. 같은 사물을 그리더라도 예술가마다 다른 렌즈를 사용하기 때문에 결과물의 감성적인 차이가 나는 것도 극사실적인 그림의 묘미라 할 수 있다.
극사실적인 그림은 종종 세부적인 부분(예를 들어 과일에 맺힌 물방울, 컵이나 그릇의 광택 등)을 드러내기 위해 확대된다. 우리는 어떤 느낌을 받았지만 말로 설명하지 못하다가 그 상황에 적합한 말을 찾아냈을 때의 쾌감을 알고 있다. 세부적인 부분을 확대한 극사실적인 그림에서는 우리가 평소 느끼고 있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무언가를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또 우리가 평소에는 간과하고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극사실적인 그림은 기술적인 위업이 주는 감동(소위 말해 장인정신에 대한 감동)과 더불어 일상 사물과 깊이 연결되는 감각·감성적 친밀감을 제공한다. 또, 하나의 사물을 오래 지켜보며 얻게 되는 철학적 탐구의 결과를 그림에 담아냄으로써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짧은 인식에 깊이 있는 고찰을 제공하고 우리가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마련해 준다. 우리가 극사실적인 그림을 볼 때 "뭐, 잘 그렸네" 정도로 스쳐 지나가는 것은 몹시 아쉬운 일이다. 화가가 그 사물을 그림으로써 얻게 된 삶의 고찰은 무엇이었을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그 사물의 아름다움은 무엇이었는지 한 번 더 생각하면서 감상한다면 좋은 영감과 함께 우리 삶이 한층 더 풍요로워질 것임을 믿는다.
안효섭 (큐레이터)

안효섭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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