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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DVD를 샀다. 소장하고 싶은 영화를 만났기 때문이다. CD나 DVD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지만, 파일보다는 훨씬 정겹게 다가온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의 표지를 보노라면, 마치 값진 재산을 보듯 마음이 뿌듯해진다. '유 캔 카운트 온 미(You Can Count on Me)'는 오래 간직하고 싶을 만큼 좋은 영화다.
어릴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새미와 테리 남매는 어른이 된 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산다. 여전히 작은 동네 스코츠빌에서 사는 누나 새미와 달리, 자유로운 테리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다. 빈털터리로 고향에 온 테리는 어린 아들을 키우며 혼자 사는 누나 집에서 머문다. 한 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은 새미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테리는 물과 기름처럼 다르다. 새미의 어린 아들은 테리를 좋아하며 따르지만, 불안정한 테리는 실수를 거듭한다. 늘 동생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새미지만, 마침내 테리에게 집을 나가라고 말한다. 모든 면에서 다른 누나와 동생은 화해할 수 있을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으며, 여러 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로 잘 알려진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첫 영화다. '갱스 오브 뉴욕'의 대본을 쓰기도 한 그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지원으로 영화를 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사제 역으로 출연도 하는데. 덤덤하면서도 진지한 얼굴이 역할에 잘 어울린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새미 역, 로라 리니의 연기다. '러브 액츄얼리'에서 발달 장애 동생을 돌보는 사라 역의 배우다. 두 작품 때문인지 그녀에게는 '영원한 누나' 이미지가 있다. 반듯하고 착하고 야무진,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이 많다. 테리 역 마크 러팔로와의 연기도 조화로운데, 두 배우의 진실한 연기는 관객을 상황 속에 몰입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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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
영화 내내 흐르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처럼 영화는 담담하면서도 어딘가 슬픈 분위기다. 부모의 이른 부재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두 남매의 모습 때문이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닮은 데라곤 전혀 없는 남매, 소통 불가의 이들이 마침내 진심이 통할 때의 감동은 크다. 그래서 제목이 '유 캔 카운트 온 미'다. '나를 믿어' '나에게 기대도 돼' 등의 뜻이다. 교과서 같던 누나 새미가 일탈행동을 할 때나 부랑아 같기만 한 테리가 조카를 챙길 때의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복잡미묘한 인간들의 다양한 면을 섬세하게 그린 솜씨가 놀랍다. 연극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극작가 케네스 로너건의 실력이 돋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고향을 떠나는 테리가 말한다. 안 좋은 일이 많았지만, 함께 있어 참 좋았다고. 자신을 믿어달라며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고 한다. "내가 어떤 바보짓을 해도 누나가 집에서 날 기다린다는 걸 알았어"라고 말한다. "유 캔 카운트 온 미"라고 하듯 눈물과 미소로 서로를 바라본다. 각자의 길로 가지만, 그렇게 서로의 진심이 통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도 먹먹해진다.
아프고 힘든 삶일지라도 "나를 믿어줘" "나에게 기대도 돼" 그렇게 말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 한 사람만 있어도 살만한 인생이다. 두 남매의 고단한 인생을 아프게 지켜보는 이에게, 괜찮다고, 인생이란 그런 거라고 가만히 말해주는 영화다. 소품이지만 여운이 길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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