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15분도시 대구'- 파리에서 부산까지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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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8  |  수정 2023-05-08 06:54  |  발행일 2023-05-08 제26면
도시는 인간이 만든 발명품

서울 지옥철처럼 부작용도

여유로운 도시 삶의 비전은

파리에서 시작한 '15분도시'

부산 이어 대구도 고심을

[박재일 칼럼] 15분도시 대구- 파리에서 부산까지
논설실장

서울 수도권의 지옥 전철로 불리는 김포골드라인 사태는 도시적 비극이다. 하루에도 3~4명의 이용객이 숨이 막혀 실신해 나가떨어진다. 이태원 압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1시간 이상의 출근길 사투 끝에 직장에 도착하면 녹초가 된다. 과연 사람 사는 세상이 맞나 싶다.

도시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자 선물이다. 물물을 교환하고 함께 즐기고 이웃을 만드는 호모 사피엔스 인간의 창조물이다. 근데 이게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수반한다. 밀집이 고조되고, 교통체증에 공간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삶의 질을 훼손한다. 세계적 인구밀도에 노출된 대한민국의 대도시는 그 강도가 세다. 그렇다면 미래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15분도시' 개념은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했다. 소르본 대학의 도시계획 전문가인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창안했고, 안 이달고 파리시장이 재선 공약으로 내놓았다. 기본적으로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반경 15분 거리 이내에서 도시의 모든 일상생활을 해결한다는 비전이다. 모든 것에는 직장에서부터 카페나 식품가게, 돌봄센터, 도서관, 영화관, 소공원, 학교, 유치원, 응급병원, 복합행정센터가 포함된다. 지향점은 여유롭게 이웃과 함께하는 도시생활이다. 걷기 때문에 교통체증도 탄소배출도 없다.

15분도시는 국내에서 부산시가 정책화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공약으로 내걸었다. 부산 전역을 60개 생활권 중심의 마을공동체로 쪼개고 각각의 15분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이다. 부산은 도로의 60%가 언덕길이다. 지형상 통행이 열악한 조건이다. 박 시장은 '집 가까이 좋은 문화, 좋은 환경, 좋은 이웃'으로 그 열세를 만회하겠단다. 무려 500개의 어린이문화공간 구축도 프로젝트에 포함됐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온 외국인 손님들은 대구의 첫인상에 놀랐다. 인구 수십만 도시로 짐작했는데 위성도시를 포함해 300만명의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이었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이제 군위까지 편입해 국내 1위 면적 도시다. 광역화될수록 15분도시의 설득력은 커진다.

15분도시는 20분 혹은 30분 개념의 'N분도시'로 세계로 퍼지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 체제에서 여러 정책들이 선보이고 있지만, 고심해 볼 만한 도시비전이다. 분지지형에 교통망이 발달한 대구는 부산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다. 어쩌면 이건 구청장들도 가세해야 할 사안으로 보이기도 한다. 수성구, 달서구, 북구란 행정구역을 세밀히 나눠서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승패는 반경 15분 내 주민이 요구하는 바를 심어 넣는 작업이다. 어쩌면 대구시민은 믿을 만한 유치원, 좋은 학원, 괜찮은 병원, 친절한 요양원, 아름다운 소공원을 원할지도 모른다. 걷기 좋은 보도는 필수다. 찻길은 있는데 사람 다니는 길이 없다면 N분도시는 성립하기 어렵다.

도시를 걷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걷기 좋은 반경 내에서 카드 사용액이 유독 증가하고 있다는 빅데이터도 있다. 아름다운 통계다. 도시도 걷다 보면 온갖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건 농촌의 목가적 평화와는 또 다른 여유이자 매력이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두 발 달린 인간은 걷는다'고 했던가. 어쩌면 세계 최저 수준의 대한민국 출산율도 도시생활에 찌들어 한가함을 잃어버린 이들이 애를 낳을 시간마저 잃어버린 탓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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