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봉제외길 최석호씨 "명맥 안끊기게 장인정신으로 안간힘"

  • 정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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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7 16:55  |  수정 2023-05-08 07:31  |  발행일 2023-05-08 제11면
대구 고성동 봉제공장 가보니
코로나 여파 공장 규모 절반으로 줄어
60대 이상 고령층이 대다수
패션산업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 봉제업 지원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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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대구 북구 고성동 '미도패션' 봉제공장. 최석호 대표가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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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대구 북구 고성동에 위치한 '미도패션' 봉제 공장. 60대 이상 근로자들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 소리가 귀를 울렸다. 지난 3일 오후 찾은 대구 북구 고성동 '미도패션' 봉제공장. 간판 없는 공장 앞을 서성이다 재봉틀 소리를 따라 입구를 겨우 찾았다.

낮게 설치된 형광등 아래에서 작업대는 분주했다. 재단된 원단과 부자재가 쌓여 있었다. 커다란 가위와 형형색색의 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자가 말을 걸기 전까지 직원들은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롯이 작업에만 열중했다.

이곳에서 경력 40년의 봉제 기술자이자, 미도패션의 대표인 최석호(67)씨를 만났다. 기자와 눈이 마주친 그는 조심스레 재봉틀에서 손을 뗀 그는 안경을 벗었다.
"내가 지금 배달 갔다 오고 옷을 출고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어서 일(봉제 작업을)하고 있어요. 많이 바쁘네요"라며 운을 뗐다.

3년 전만 해도 20명 이상 근무했다고 했다. 이제 절반 남짓 남아있었다. 그나마도 모두 60세 이상 고령층이고, 70대 근로자도 눈에 띄었다. 숙련도 높은 베테랑들이 묵묵히 재봉틀 앞을 지키고 있지만 가정의 달을 맞아 늘어난 물량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않다고 했다.

최씨는 "보통 봄·가을이 바쁘고 여름·겨울은 비수기다. 5월 초는 특히 바쁜 시기인데 일손이 모자라다 보니 쉴틈이 없다"면서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옷은 납기가 중요하다. 제때 진열이 돼야 물건이 팔리지 조금만 늦어도 재고로 남기 일쑤다. 나들이 가기 좋은 계절이지만 우리 기술자들은 봉제공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경남 진주 출신인 최씨는 섬유산업이 활황이던 1980년대 대구에 안착했다. 지금은 사양산업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니지만 당시엔 한국 경제를 일으킨 수출주역이었다. 기술력이 뛰어난 봉제사들의 자부심도 남달랐다. 단순히 옷을 만드는 게 아닌 특정 분야를 이끄는 '장인(匠人)'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는 "우리 세대만 해도 공부를 많이 못한 채 생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았다. 봉제는 기술만 제대로 익히면 인정받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인기도 높았다"며 옛 기억을 소환했다.

섬유산업이 하향세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동료는 하나 둘 떠났고 기술을 전수받을 후임을 찾지 못해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평생 외길을 걸어온 그다. 그래도 재봉틀을 쉽사리 손에서 놓을 순 없다고 했다.

돌파구를 찾으려 몸부림치지만 힘이 부치는 건 어쩔 수 없단다.최 대표는 "젊은 친구들이 이쪽 기술을 배우려하지 않으니 어쩌면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봉제업이 이대로 사라지게 둘 순 없다. 패션 산업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며 "봉제 기술자들은 온 종일 앉아서 일에만 집중하는 탓에 세상 물정엔 많이 어둡다. 힘겹게 봉제업을 이어가는 이들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내 봉제업체 종사자의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의 '2021 봉제업체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종사자 연령대는 50대가 45.1%로 가장 많고, 60대 이상도 32.6%를 차지했다.


글·사진=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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