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時時刻刻)] 교육개혁을 위한 대학 평준화, 어렵지만 가야 할 길

  •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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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9  |  수정 2023-05-09 08:38  |  발행일 2023-05-09 제23면
[시시각각(時時刻刻)] 교육개혁을 위한 대학 평준화, 어렵지만 가야 할 길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
얼마 전 가까운 지인에게 자녀가 어느 대학교에 지원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학교는 밝히지 않고 재수를 한다고만 대답하였다. 왜 어느 대학이라고 대답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어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가, 수험생 부모에게 지원 대학을 묻는 것 자체가 큰 실례라고 빈축을 샀다.

요즘 자녀의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학원과 과외선생님을 물색해 고등학교 수준의 사교육을 시킨다. 부모들의 경제적 능력과 정보 능력이 자녀의 대학 입시 결과를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요건이 되어버렸다. 어느 집이나 수험생 하나를 서열 높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온 가족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느라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부정하고 싶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통계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정시모집 합격자 중 71.6%가 서울과 경기 출신이고, N수생이 61.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의 현주소이다. 지금의 교육시스템에 만족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과연 얼마나 될까. 교육시스템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란 생각조차 못 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을 주장하며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제시한다. 현 정부도 문·이과통합에 따른 문제, 수시와 정시의 비율, 고교학점제, 성취평가제 등을 활발하게 논의하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수험생의 수학능력에 대한 평가방법을 바꾸는 것은 사교육 시장의 지형만 바꾸고 학부모에게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수험생들의 수학능력을 세밀하게 따지는 평가방식을 개선하는 세부적 논의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나라처럼 대학의 서열화가 고착된 상황에서는 이것만으로 고교교육이 정상화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학의 서열화는 초·중·고 교육에서 학생들의 창의성 교육, 인성 교육, 다양성 개발 등을 어렵게 하는 핵심적인 원인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를 살펴보면 국공립대학이 다수를 차지하고 일부 특수한 시스템을 제외하고 서열이 거의 없어서 학생과 학부모의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 없이도 모든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학 평준화의 길은 어려운 길이지만 우리나라의 축적된 경험으로 부작용들을 해소하며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우리나라 입시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해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학 서열화라는 기존의 골조를 그대로 두고 대학 교육시스템과 고등학교 교육시스템을 분리해서 논의를 진행한다면, 대입제도를 아무리 개선한다고 해도 계속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수학능력이 부족한 학생들도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졸업을 보장받게 되어 교육제도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교육의 비효율성을 유발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평가에 있어서 최소한의 대입기준이 있어야 하고, 이를 충족시키는 수험생들은 자신들이 진학할 대학을 보장받아야 한다. 적어도 서열 높은 대학을 위해 우수한 학생들이 당연한 듯 재수를 선택하는 현실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대학 서열화 개선은 대입제도의 개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교육의 정상화를 가져와 학부모들의 사교육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완화해줄 것이다. 나아가 지역균형발전 및 대학사회 내 학문 발전을 위한 건전한 경쟁문화 조성에도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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