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직구 핵직구] 백악관에서 팝송 부르기

  •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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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0  |  수정 2023-05-10 07:03  |  발행일 2023-05-10 제27면

[돌직구 핵직구] 백악관에서 팝송 부르기
이재동 변호사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미국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라는 팝송을 불러 환호를 불러일으켰을 때일 것이다. 길고도 난해해서 미국인들도 어려워하는 노래를 유창하게 부르는 동영상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시대에 이런 일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이례적인 장면이 나에게는 즐거운 에피소드로 여겨지지 않고 뭔가 마뜩잖은 느낌을 주었다. 어떤 나라에 갔을 때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하여 그 나라의 문화나 역사를 미리 공부하고 또 국민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하여 그 나라의 노래 하나를 준비하였다면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은 우리에게 그저 그런 나라가 아니라 우리 불행한 현대사에 직접 관여하여 우리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나라들이다.

어릴 적에는 주위에 일본 노래를 잘 부르는 어른들이 많았다. 시골이지만 일본 잡지를 읽는 어른들도 있었다. 우리 세대는 팝송에 심취하고 미국 영화를 보며 자랐다. 미국은 모든 좋은 것의 상징이었다. 좋은 물건은 다 미국에서 만든 것이어서 뭘 먹어도 잘 소화하는 사람을 보고는 우스개로 '미제 밥통'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위장을 밥통이라 했다.

윤 대통령도 그런 세대다. 검사 시절에도 두주불사로 잘 알려진 그가 평소 술에 취하면 팝송을 즐겨 불렀다고 한다. 부친은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에서 유학한 교수여서 빈곤했던 같은 세대들보다 이런 문화에 더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메리칸 파이'라는 노래도 미국의 청년문화인 로큰롤을 찬미하고 있는데, 앨범의 표지는 척 내민 엄지손가락에 미국 국기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어 미국 제일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번 미국 방문의 성과에 관해서도 말들이 많지만 좋은 분위기와는 반대로 미국의 이익과 전략에 종속되어 주변국과의 대치상황을 악화시키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증대시켰다는 평이 많다. 대통령이 부른 노래가 좋은 협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그저 일방적인 애정이나 종속의 표현이라면 곤란한 일이다.

몽테뉴의 '에세'에 보면,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는 아들인 저 위대한 알렉산더가 한 연회에서 뛰어난 음악가들과 실력을 다투듯 노래 불렀다는 것을 듣고 "그렇게 노래를 잘하다니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질책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플루타르코스는 왕이 그런 부차적인 일들에 뛰어나 보이는 것은 보다 필수적이고 유용한 일에 바쳐야 마땅한 여가와 학습을 잘못 사용했다는 증거만 내보일 뿐이라고 하였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안전을 확보하고 국민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할 막중한 책임을 지는 일이다. 사람마다 소질과 성장환경이 달라 생각이나 선호가 다 다르지만 지도자가 되면 이 모든 것을 그 책임에 맞게 맞추려고 노력해야 함에도 윤 대통령은 그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대통령이 되자 즐기던 술을 끊었다는 노무현 대통령과는 달리 떠들썩한 술자리를 즐기고 일본 총리와도 폭탄주를 한다. 좋아하는 나라는 계속 좋아하고 싫은 나라는 그냥 싫다. 껄끄러운 사람은 피하고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는다. 대화는 주로 자신이 하는 말로 채워진다. '자유'를 부르짖지만 국가가 강자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달라져야 하는데 달라지지 않는다. 오늘이 취임한 지 꼭 1년이다. 이제라도 좀 달라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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