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년의 세월을 지켜오고 있는 수정사 대웅전. |
경북 청송 파천면 송강리에 위치한 '수정사'는 나옹대사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천년고찰의 수도도량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말사로, 주변의 정기가 수려하고 산자수명해 전국의 많은 불자들이 찾아와 불심을 키우고 있다.
청송 8경 중 한 곳인 수정사는 창건 당시 기록은 없지만, 전통사찰로서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가 창건한 절집이라고 전해진다. 사찰 뒤 비봉산 자락의 주변 경치가 아름답고, 산속에서 흘러내리는 샘물과 계곡에 흩어진 돌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해 수정사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수정사는 원래 현 위치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9천900㎡ 규모의 건물 8∼9동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300여 년 전 화재로 모두 소실됐고, 지금의 사찰은 수정사 큰 절의 산내 암자였다. 일주문 앞 밭에서 초석 잔해와 불탑의 기단석으로 보이는 석부재가 발견되어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사찰의 위치를 입증해 주고 있다.
![]() |
청송 수정사 대웅전 내부. |
경내에는 대웅전(大雄殿), 산신각(山神閣), 적묵당(寂默堂), 요사(寮舍)가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은 경북도 문화재 자료 제73호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다포계의 팔작지붕을 한 조선시대의 단아한 건물 양식이다.
수정사가 번성할 때는 파천면과 진보면 일대의 많은 토지를 소유할 만큼 보기 드물게 큰 사찰이었다. 아직 토지대장에 당시 기록들이 남아있다.
수정사에는 꽃이 많아 '숨겨진 천상의 화원'이라고도 한다. 이 꽃자리가 의병들의 진자리였던 때도 있었다. 고종 33년인 1896년 의병장 김하락이 청송 안덕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뒤 부상병과 새로 모집한 의병을 합쳐 100여 명의 혼성부대를 결성하여 천혜의 요새인 이곳 수정사에 왔다. 그리고 그해 4월7일부터 14일까지 왜병 200여 명을 맞아 전투를 치러 승리했다. 달아나는 왜병을 추격해 30여 명을 사살하고 수정사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지 보급 스님은 현재 12년째 사찰을 지키고 있다. 그동안 일주문과 요사채를 신축했다. 특히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는 3층 석탑을 세우기 위해 각종 자료를 수집하면서 불심을 모으고 있다.
보급 스님은 "불탑 복원은 단순히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역사·문화적 관점에서 추진하고 있다. 종교적 의미는 물론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수정사 아랫마을에는 청송정원과 가요 '황성옛터'의 작사가 왕평의 묘소가 있다. 인근에 객주문학관과 신촌약수터, 덕천민속마을, 국립공원이 위치해 있다. 또 반변천 맑은 물이 사계절 흐르고 소나무 숲이 국도변에 조성되어 길손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글·사진=배운철기자 baeuc@yeongnam.com

배운철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