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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현(경북대 사대 불어교육전공 동문·시인) |
전공 학생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철저히 외면당하고 인권침해를 당하는 일이 지금 고등교육 현장 한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다. 다름 아닌 지역거점국립대의 표본인 경북대에서 말이다. 해당 전공은 단 2명의 교수로만 유지되던 사범대 유럽어교육학부 '불어교육'이다. 정년퇴임을 앞둔 한 교수가 사실상 전공 폐지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학생들이 반대를 외쳐 왔지만 한결같이 묵살됐다. 지난 2월 방학 중 단 세 차례, 그것도 매번 2~3명의 학생만 불러 전공 폐지 당위성만 강변한 학과 교수와의 면담, 그리고 단 한 번 학생대표를 불러 강압적 설득으로 끝난 학장과의 면담이 이른바 동의 절차의 전부였다.
개학 전 교수와 학장은 전공 폐지안을 본부에 전했고, 전공 교수는 개학 후인 3월17일에서야 학생대표를 불러 전체 학생들에게 공지토록 했다. 신입생들은 어떤 공지도 받지 않은 채 입학했다. 학생들은 좌절과 분노 속에서 학업은 물론 일상마저 힘든 정신적 고통을 안고 지내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해당 학문과 편제를 소명으로 지켜야 할 국립대 교수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묻고자 찾아간 동문에게는 "해당 학문 분야의 어두운 전망" "학생들의 불성실한 자세" 등의 이유를 댔다. 학생들의 면학 자세를 폄훼한 데 대해 재학생들은 크게 분노했다. 무엇보다도 곧 정년퇴임을 맞는 교수가 전공 폐지를 결정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사범대학장과 교무처장은 '졸업생, 학부모, 가장 중요한 재학생들의 동의 없는 잘못된 전공 폐지안'이라는 동문의 지적에 대해 그저 "학교 대의를 위해 이해해 달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전공을 폐지하려면 학생 동의는 법적으로 명시된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냐는 동문의 질문에 그들은 꼭 필요한 사항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국립대 폐과 관련 법률은 "대학은 이를 결정하기 전에 관련 학과나 학부의 직원, 학생, 졸업생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교 당국은 전공 폐지에 앞서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 봤어야 했다. 해당 관계자들을 모은 공청회라도 열었더라면 프랑스어와 프랑스 교육의 미래가 가리키는 밝은 전망에 역행하는 '전공 폐지'라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등교육 철학이라고는 하나 없이 단기 실적만 추구하는 학교의 행보에서 전공 학생들은 결코 가라앉힐 수 없는 분노와 고통을 떠안게 됐다.
이 사실을 민원으로 알게 된 교육부의 판단은 또 어떠했을까. 교육부 민원 부서는 학생과 동문의 민원에도 불구하고 경북대 측 답변의 진위 확인조차 없이 답변 기한을 연장한다는 기만적인 통보 후 기습적으로 전공 폐지안을 승인했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의견을 덮고 전공 폐지안을 제출한 대학과 마찬가지로 재학생 인권을 다시 한번 침해한 공공기관이 됐다.
이제 진실은 밝혀져야 하며 과오는 수정돼야 한다. 국립대 편제를 사유화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여닫는 교수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대학이 어렵더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가 이런 식으로 특정 학문 편제를 없애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대학 당국의 일방적인 답변만으로 전공 폐지의 정당성을 인정한 교육당국의 무능도 더 이상 허락돼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그토록 믿었던 전통을 가진 국립대 울타리에서 미래를 만들어나가던 후학들의 꿈을 이들이 빼앗아 가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장계현(경북대 사대 불어교육전공 동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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