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구를 '커피하우스의 도시'로 만들자

  • 이상철 대구시 위생정책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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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7 08:07  |  수정 2023-05-17 08:44  |  발행일 2023-05-17 제23면

이상철
이상철 (대구시 위생정책과 주무관)

커피(Coffee), 카페(Cafe), 코페(Kophe), 고히(コ━ヒ━), 카와(Qahwa), 카파(Kaffa), 카바(Kava)….

세계 각국에서 커피를 의미하는 단어는 이처럼 다양하지만 어원은 '힘' '정렬' '에너지' '허기를 덜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어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어원의 뜻을 유추해 보면 커피가 잠을 쫓는 탁월한 효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슬람 성직자들이 밤샘 기도를 위해 커피를 애용했고, 이슬람세계가 확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 점이 쉽게 수긍이 간다.

중세 유럽의 십자군 전쟁은 성지(예루살렘)를 놓고 벌인 종교전쟁이지만 커피가 유럽 전역에 빠르게 전파되는 계기가 됐다. 애초 로마 가톨릭은 이슬람교 음료인 커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어서 커피를 '악마의 음료'로 간주하고 음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커피를 맛본 자들은 이를 거부하기 힘들었고, 교계는 커피가 유럽 전역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교황 클레멘스 8세(1592~1605)는 "사탄의 음료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단 말이냐. 이교도들만 커피를 즐긴다면 너무 아까운 일이다. 커피에 세례를 내려 사탄을 쫓아내고 진정한 천주교의 음료로 명한다"며 커피를 공식 인정했다. 이렇게 커피는 악마의 지위에서 교황에게 세례까지 받는 신분 상승을 이루게 된다.

그 후 커피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퍼져갔지만 또 한 번 위기를 맞는다. 영국에서는 '커피하우스'가 혁명의 발원지라는 이유로 폐쇄된 적이 있었고, 남성만 출입이 가능한 적도 있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커피하우스에 남편을 빼앗긴 주부들은 이를 반대하는 탄원서를 내며 강력히 저항했으며, 결국 여성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했다. 남녀나 계층 간 차이를 문제 삼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말미암아 사회 각계각층이 자유롭게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가 됐다.

이후 커피하우스는 단순한 모임 장소가 아닌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한다. 세계 최대 보험회사 '로이드'의 출발도 커피하우스였고, 영국의 문학과 언론을 발전시킨 것도 커피하우스였다. 또 정치인, 로비스트, 지식인, 상인, 예술인 등이 상호 교류하면서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언론 아닌 언론'이 돼 '사회적 공기(公器)'의 역할을 했다. 사실 지금도 커피나 커피숍이 갖는 기능 중 하나가 여론을 조성하고 민심을 알 수 있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커피는 사회적 공기의 도구가 됐다.

공교롭게도 대구와 경북에서 사회적 공기의 역할을 하는 언론사인 영남일보가 '커피&베이커리' 축제를 매년 대구에서 개최하고 있다. 타 지역의 커피축제와 차별화한 축제다. '역사 속의 커피하우스'처럼 대구의 혁신적인 문화를 조성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게 해줄 진정한 사회적 공기의 역할을 영남일보가 커피&베이커리 축제를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받들고 내 고장 발전의 향도로서 세계 속의 한국인을 지향한다.'

1945년 창간한 영남일보는 그 설립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영남일보가 창간 취지에 입각해 세계 속에 커피도시로 대구가 우뚝 설 수 있도록 일조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 영국이 커피하우스를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됐듯이 대구도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하지 말란 법이 없다. 대구를 진정한 '커피하우스의 도시'로 만들어 보자.

이상철 (대구시 위생정책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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