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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시인〉 |
문자 알림음이 떴다. EBS 방송 작가라고 시간 될 때 전화를 달라는 메시지였다.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 방송국 섭외가 오는구나!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키고 전화를 걸었다. 구미를 알리는 방송을 찍는데 금오산 정상을 함께 오르며 설명을 해 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아! 금오산이라 해발 977m로 꽤 높은 산이 아니던가. 구미에 살지만, 정상은 두 번 가봤다. 한번은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겠다는 욕심으로 눈길을 헤치고, 한 번은 폭포까지만 할딱 고개까지만 하다가 정상까지 가게 되었다.
뭉게뭉게 구름 사이 얼굴을 내민 약사암은 얼마나 신비로웠던가. 구름을 타고 신선이 내려온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리고 정상에서 먹던 컵라면과 믹스커피는 얼마나 달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정상까지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발은 금오산 입구까지 갔지만 다른 발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금오산 정상을 오르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연락을 했다. 친구는 방송에 나갈 절호의 찬스를 왜 놓쳤냐고 어떡하든 가겠다고 하지 그랬냐고 아쉬워했다. 올라가지 못해서라기보다 나한테 맞는 자리가 아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시인이 꼭 책과 함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금오산 정상을 오르며 폭포와 절과 산성의 유례를 설명하는 것은 내가 아니어도 적임자가 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와 같은 우스개로 하는 말도 있지만, 문학 모임에서도 나는 자주 이런 기분을 느낀다. 행사 내내 가방 맡아주는 친구처럼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두리번거린다. 적합한 자리에 적당한 쓰임을 생각한다. 나는 각자의 자리와 각자의 쓰임을 믿는다. 이런 믿음은 '노란 꽃은 더 노랗게 빨간 꽃은 빨갛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며, 빛나려고 하지 않으면 빛날 수 있다는 걸 나는 경험을 통해 알았다.
인정받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인정은 멀어지고 집착만 남는 것 같다. '문학은 질투를 해도 망하고 질투를 안 해도 망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나는 이 말이 꽤 힘이 되었다. 나의 욕망을 이해하고 타인의 욕망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까? 세상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조금 더 재밌어지고 다정해지지 않을까. 어쨌든 금오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 생수 한 병 들고 어느 날 내 발걸음에 맞게 올라 볼까 한다.

임수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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