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직터뷰] 영천 은해사 조실 법타 스님 "남북 불교 화합은 작은 통일…꽉 막힌 교류의 길 활짝 열리길"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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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24 08:34  |  수정 2023-11-29 15:45  |  발행일 2023-05-24 제25면

법타스님2
법타 스님이 운부암 경내 석탑 옆에서 합장을 하고 있다. 스님은 "국민이 행복하려면 정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내년 국회의원 선거 땐 판단 없이 찍지 말고 반드시 후보자의 됨됨이를 살펴보자"고 말했다.

"운부암 아래 물웅덩이에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허공에 걸쳐진 소나무에 쌓인 봄눈이 녹아떨어지며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수면에 와인잔 연주나 오르골 소리처럼 동그란 파문들을 탄주한다(이하 생략)" 영천 은해사 운부암(雲浮庵) 앞 연못에서 빚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어로 조탁한 엄원태 시인의 시 '파문'의 일부다. 열사흘 전, 그 운부암으로 들어갔다. 은해사 본전에서 산길 3.5㎞를 올라가니 고색창연한 절집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라, 선원(禪院) 앞 연못 물에도 절집이 있는 게 아닌가. 물 위에 고스란히 비친 운부암, 영락없는 데칼코마니다. 눈을 떼지 못하다 돌계단을 오르고 나니 보화루가 있었다. 그 누각에서 노스님이 반갑게 손을 흔드셨다. 은해사 조실(祖室) 법타(法陀) 스님이다. '부처님 오신 날'(27일)을 앞두고 은해사 산중 최고 어른이자 불교계 1세대 통일운동가로 유명한 그를 만나 '스님으로 사는 법'과 세간사(世間事)에 대한 고견을 들었다.

불교계 1세대 통일운동가
"1989년 첫 방북 이후 100차례 다녀와
굶주린 주민들 위해 국수·빵공장 세워
YS땐 북풍 휘말려 모진 고문·수감도
친북 승려로 매도 당할때 가슴 아팠죠"

국민을 불행하게 하는 정치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염치라곤 없어
라이벌이 아니라 적과 적이 싸우는 꼴
내년 국회의원선거 판단없이 찍지 말고
반드시 후보자 됨됨이·정책 잘 살펴야"

▶스님은 '승려 될 팔자'를 안고 태어났다고 여기십니까. 출가 적 얘기가 궁금합니다.

"놀라지 마세요. 내 생일이 음력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더 이상 설명 안 해도 되겠죠.(웃음) 코흘리개 때, 고향인 청주(충북) 집에 탁발승이 오곤 했어요. 그분들이 천수경을 독송하는 모습이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수 없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첫 발심(發心)이었죠, 그때는 몰랐지만. 중학교 올라가기 전엔 도서관에서 살았어요. 반야심경을 읽고 외웠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중학생 땐 '미친 놈'처럼 절에 들러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냥 절이 당기더라고요. 내친김에 중학교 3학년 때 속리산 법주사 추담 스님을 찾아갔죠. '스님이 되고 싶다'고 졸랐어요. 스님께선 허허 웃으시더니 '중도 무식하면 안 된다'며 고교 졸업장을 받고 난 뒤 오라고 하셨죠. 3년이 왜 그렇게 길어요. 졸업식 마치자마자 졸업장을 추담 스님 앞에 떡하니 내놓았어요. 근데 스님 되겠다고 집 떠날 때, 아버지 말씀이 아직도 내 골수에 맺혀 있어요. '뭐가 그리 급하냐. 더 이상 집안 망신은 시키지 마라'고. '이왕 중으로 살려면 최선을 다해라' 그 뜻이었어요"

법타 스님은 1965년 세랍(世臘·스님의 세속 나이) 20세 때 추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년 뒤 법주사에서 추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계했다.

▶쉬엄쉬엄하셔도 될 세랍(78세)인데, 해마다 동·하안거 참선 수행에 몰두하십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60년 가까운 승려 생활 가운데 20년은 책만 팠죠. 또 20여 년은 소임(조계종단 직책)을 살았어요. 근데 '승려로서 나 자신을 알아보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라는 상념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하화중생은 열심히 했다고 여기지만, 상구보리는 좀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 이젠 승려로서 '내 인생'을 정리할 때가 아닌가 라는…. 그래서 '수행 삼매경'에 빠져 있답니다. 제 화두가 '이 뭣꼬' 아닙니까.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런 물음표이죠."

법타 스님은 그동안 서른 네 차례 안거 수행을 했다. 오는 음력 4월 보름~7월 보름 하안거를 앞두고 있다. 과거 사판승(事判僧) 때도 소임이 끝날 때마다 다음 소임 때까진 늘 선방(禪房)에 있었다. 스님은 "평생을 참선한 스님들도 계시는데, 그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오랜 세월 남북 불교 교류에 매진해 오셨지요. 우여곡절이 많았겠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평화통일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에 불교인이 앞장서야겠다고 다짐했지요. 1989년 한국 국적의 승려로선 처음으로 북한엘 갔어요. 임수경보다 한 일주일 먼저 갔을 걸요. 지금까지 북한엔 모두 100차례가량 갔어요. 금강산만도 33차례. 그 산에 108차례만 가면 통일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남북 불교가 화합하고 교류하는 것은 한마디로 '작은 통일'입니다. 훗날 통일이 될 때 북한 불교의 부흥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요. 비록 분단이 됐지만 우리 불교는 본디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지요. 무엇보다 굶주린 북한 주민을 직접 보니 너무 심란했습니다. 밥이 곧 평화인데, 배 속이 든든해야죠. 사상만을 먹고는 배불리 살 수 없거든요. 북한 사리원에 '금강국수 공장'(1997년)을, 평양에 금강산빵공장(2006년)을 세운 것도 그런 생각에서죠. 국수공장에선 인천에서 남포로 보낸 밀가루로 하루 7천700명 분의 국수를 만들었어요. 근데 이명박 정부 때 금강산 관광객 피격·천안함 피폭 사건, 연평해전이 잇따라 터졌잖아요. 결국 5·24조치(2010년)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돼 지금은 그 공장이 어떻게 돼 있는지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죠. 요즘은 탈북민 정착을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분들 처지에선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빌 수 있으니까요."

평화통일불교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법타 스님은 지난해 남북 불교 교류의 발자취를 담은 '평불협 30년사'를 펴내 주목을 받았다.

▶북풍에 휘말려 애꿎은 옥살이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1994년 김영삼 정부 때죠. 느닷없는 신공안정국이 몰아쳤어요. 우리나라에 주사파가 5만명이 된다느니, 각계각층에 있다느니 말들이 많았지요. 내가 북한을 한 대여섯 번 다녀왔을 즈음이었죠. 당연히 타깃이 됐어요. '주사파'라는 색깔을 입히더라고요. 남영동 대공분실에 붙잡혀 갔습니다. 날짜도 안 잊혀요. 7월10일. '죽도록 맞는다'라는 말을 실감했죠. 잠도 재우지 않은 채. 나중에 들어보니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당한 방에 내가 있었더라고요. 결국 교도소에서 105일간 구금됐습니다. 사실, 통일운동 하면서 이런 핍박은 각오했어요. 근데 가슴이 아팠던 것은 주위에서 나를 '친북 승려'로 매도할 때였습니다. 감옥에서 스승이신 일타 스님의 편지를 받고는 펑펑 울었습니다. 스님 말씀이 '네 본분은 수행임을 잊어선 안 된다. 이제 국가가 너에게 수행의 기회를 줬다. 그곳을 국립 선방으로 여기고 나올 때까지 열심히 정진해라'는 것이었죠. 감방(監房)을 선방으로 여기며 '이 뭣꼬' 화두에 매진했습니다."

▶작금 속세 정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여야가 진영논리에 갇혀 철천지수처럼 물고 뜯고 있습니다.

"국민이 있고 국가가 있는 것 아닙니까. 정치인들이 일신의 이익과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있어요. 염치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여(與)와 야(野)'라는 게 선의의 라이벌이지, 결코 적의 관계가 아닙니다. 요새 정치인들 보면 완전히 적과 적이 마주해 싸우는 것 같아요. 도대체 우리 국민과 국가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국민을 위한다면 서로 진정성 있게 대화를 해야 합니다. 마하트마 간디도 얘기했잖습니까. 혼이 없는 정치,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는 국민을 불행하게 한다고요. 부처님 말씀대로 여야가 물과 기름처럼 겉돌지 말고 물과 우유처럼 화합해 안심입명(安心立命)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정치는 국민만을 바라봐야 해요. 그래서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진짜 중요합니다. 국민도 선량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진짜 주권자임을 명심해야 해요. 답이 나왔죠? 투표를 잘 해야 합니다. 판단 없이 찍으면 안 되지요. 특히 말만 번지르르한 후보자는 괄호 밖입니다. 후보자의 됨됨이와 정책을 꼼꼼히 살펴야 하겠지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속세와 중생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은.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든 중생이 분수를 알고 지켰으면 해요. 세간사 모든 번뇌가 거기서 출발하거든요. 번뇌하는 이는 그 번뇌가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생각합시다. 가령, 속세에서 '데이트 폭력'이란 게 있잖아요. 내가 더 노력을 해 상대를 내 사람이 되도록 하든지, 그게 안 되면 깨끗이 포기해야지요. '저 사람은 나와 인연을 지을 수 없구나' 이렇게 생각해야지요. 인생은 내가 생각하는 하나만이 다는 아니거든요. 재력·명예도 다 일시적인 것이고…. 분수를 지키면 인생이 자유롭고 행복해집니다."

법타 스님은 인터뷰를 마치고 산문(山門)을 나서는 기자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기자도 우리 승려와 비슷하잖습니까, 사회의 목탁으로서. 작은 이익에 야합하지 말고 '정의의 예봉(銳鋒)'이 돼 주시오." 스님의 말씀을 곰곰이 곱씹으며 암자를 내려왔다.

글·사진=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

◆법타 스님은

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학·석사, 미국 클레이턴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0년엔 동국대에서 승려 최초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계종 총무부장·은해사 주지 등을 지냈다. 2017년부터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으로 있다. 2018년 대종사 법계를 품수한 데 이어 2021년 은해사 조실에 추대됐다.

◆법타스님이 권하는 생활 속 명상법

"명상법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지요. 밤에 '내가 오늘 무엇을 했나' 한 번 생각하고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가집시다. 또 아침에 일어난 뒤엔 5분이라도 앉아서 눈을 감은 채 '내 몸과 마음 덕택에 무사히 잤다'라고 말하면서 하루를 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종의 자기암시이지요. 그리고 아침 출근할 땐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한 번 생각한 뒤 '오늘 내게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매일 실천하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신기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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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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