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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
칠곡군이 그의 동상을 세운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먼저 간 헌신자들에 대한 예우를 우린 잊고 살았다. 미8군 육군중장 워커(Walton Harris Walker) 사령관은 한국전에 함께 참전한 아들(대위)을 만나러 나섰다 지프가 전복돼 사망했다. 1·2차세계대전에서도 살아남은 그가 서울 외곽 도봉구에서 허망하게 죽었다. 그가 '지키거나 아니면 죽어라-stand or die'라고 전통문을 날린 낙동강 방어선이 없었다면 흔히 말하듯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없다.
대학시절 서울 워커힐 호텔 수영장에 간 적이 있다. 그때는 다소 대중적이었다. 워커 장군의 이름을 땄다는 것은 훨씬 뒤에 알았다. 대구 남구 대명동의 캠프 워커도 취재차 들른 적이 있지만 워커를 떠올리지는 못했다. 사실 역사나 인물을 현재의 우리가 세세하게 다 알기는 어렵다. 한국전에서 미군은 3만6천명이 전사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전장으로 떠나는 그 힘은 무엇인가.
애국심은 21세기에도 강력한 무기다. 작금의 우크라이나를 보면 그렇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맞선다는 것은 만화나 영화에서만 보는 장면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애국심이 불타오르지 않았다면 이 전쟁은 러시아의 의도대로 그림이 그려지고 종결됐을 것이다. 작은 나라의 의지는 서방 NATO를 움직이고 미국을 붙잡았다.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가 됐다. 망명을 거절한 코미디언 출신 젤렌스키의 항전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심리전에서 이겼다. 물론 전쟁은 참혹하다. 4천300만명 우크라이나 국민 중 800만명이 난민이 됐다. 전사자는 매일 나온다. 13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 그나마 우크라이나는 구분되는 적과 싸운다. 작금의 시리아는 내전이다. 난민 600만명은 주변국을 유랑한다. 그들에겐 이 세상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닌 지옥일 것이다.
동포(同胞), 같은 핏줄의 민족이 서로 피를 흘렸다는 의미의 '동족상잔 6·25'를 어릴 적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때는 '그래서 왜'라는 반문이 앞섰다. 태어나기도 전의 전쟁을 어른들이 반복하는데 도통 감정이입이 안된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보고 또 지구상의 다른 전쟁들이 전해지면서 점차 깨닫는다. 역사가 어떻게 규정하든, 전쟁의 현재를 마주한 인간들에게 그건 죽고 사느냐의 문제다. 차라리 통일이라도 하는 자들은 이념 낭만주의자들이다. 낙동강 방어선이 없었다면 미국의 두 번째 계획대로 태평양 서(西) 사모아에 수십만 명이 건너가 한국 망명정부가 세워졌을 수도 있다. 어쩌면 워커가 2차대전 '덩케르크'의 비극을 부산에서 반복해선 안 된다고 기록했듯이, 남은 자들은 부산 앞바다를 뒤로 하고 역사에 남을 대학살의 당사자가 됐을 것이다.
3년 만에 휴전한 6·25는 참혹했다. 한민족 250만명이 희생됐다. 나의 모친의 오빠도 그랬다. 낙동강 방어선으로 달려간 그날로 끝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벽에 늘 머리를 부딪치며 맏아들을 불렀다. 동네 사람들은 니네 아버지는 '화병'으로 죽었다고 어린 엄마에게 중얼거렸다. 국방부에 이제야 DNA를 등록했는데 백골이라도 수습된다면 천운일 것이다. 우린 전쟁을 과거사로 잊고 있다. 애국심 없는 전쟁은 이길 수가 없다. 6·25 정전협정 70주년이다. 13만명이 전사한 중공군의 중국은 미국에 베팅하지 말라고 우리를 겁박한다. 지금 우리는 애국심에 불타오를 준비가 돼 있는가.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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