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코더·디카 들고 헤드폰 쓴 MZ…촌스러울수록 힙하네

  •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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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3  |  수정 2023-06-23 08:48  |  발행일 2023-06-23 제12면

캠코더·디카 들고 헤드폰 쓴 MZ…촌스러울수록 힙하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공존 문화가 젊은층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향유되고 있다.

레트로(복고풍) 코드로 패션계에서 시작된 이 바람은 카메라 등 디지털 가전제품구매 취향까지 최근 무섭게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특히 1990년 중반∼2000년 초에 태어난 Z세대가 '레트로'문화에 열광적이다. 이 때문에 캠코더, 디지털카메라, 헤드폰 등 IT 발전 속에 한때 자취를 감췄던 제품들까지 속속 부활하는 추세다.

소니헤드폰 구매 80%가 15~34세
아이팟·폴라로이드 등 거래 활기
LP음반 판매도 3년 연속 증가세
레어 아이템 수집·재미 추구 욕구
복고열풍 패션 넘어 소품으로 확장


◆올해는 Y2K월드

Y2K는 연도를 뜻하는 'Year', 숫자 '2', 1천을 나타내는 'Kilo'를 결합한 단어다. 이 단어들을 모두 합치면 '2000년'을 의미한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 통칭한다. 당시 컴퓨터는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만 인식하던 때다. 때문에 2000년이 되면 뒷자리인 '00'만 인식해 컴퓨터가 1900년과 혼동하면서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와 종말론이 퍼졌었다. 그 혼란과 세기말 감성 속에 피어난 패션 문화가 Y2K(2000년대 세기말 감성)다.

한때 '촌스러운 패션'이라 불리던 Y2K 스타일이 몇 년 전부터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걸그룹 '뉴진스'의 데뷔는 대중문화 전반으로 Y2K 트렌드가 번져 나가는 시발점이 됐다. 4세대 걸그룹인 뉴진스는 스타일링부터 음반 구성, 음원까지 뉴트로(New+Retro)에 기반해 노래를 선보였다. 검은 긴 생머리에 스포티한 의상을 하고 나타난 이들의 매력은 기성세대에게 1세대 걸그룹 S.E.S.를 떠오르게 했다. 지난해 출시한 뉴진스의 노래 'Ditto'뮤직비디오에는 과거의 학창 시절을 콘셉트로 한국식 교복과 캠코더를 등장시켰다.

캠코더·디카 들고 헤드폰 쓴 MZ…촌스러울수록 힙하네
캠코더, 디지털카메라, 헤드폰 등 IT 발전으로 자취를 감췄던 제품들이 속속 부활하는 추세다. 〈에이블리 제공〉

◆레트로 감성 디지털카메라 인기몰이

Y2K는 패션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소품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캠코더, 디지털카메라 등 가전제품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에 따르면 복고풍(레트로) 카메라 열풍으로 가전·디지털 카테고리 수요가 급증했다. 지난달 가전·디지털 카테고리 상품 주문 수와 거래량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각각 190%, 145% 증가했다. 복고풍 카메라·캠코더 수요가 이 같은 성장을 견인했다.

이달 1~7일간 인기 라이프 브랜드인 '블링몬스터즈'의 빈티지 캠코더 상품 판매량은 직전 동기(5월25일~31일) 대비 2배 늘었다. 이 상품은 5월부터 카테고리 랭킹 상위권을 차지해 히트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기간 인스탁스의 거래액 역시 직전 같은 기간 대비 85%, 구매 고객 수는 50% 늘었다. 다채로운 색상의 필름 카메라가 인기를 끌며 코닥 필름카메라 거래액도 성장세를 보인다.

검색량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달 캠코더 검색량은 지난해 5월 대비 275배 증가했다. 레트로 카메라는 20배,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5.5배 각각 늘었다. 고사양의 스마트폰이 자리 잡았지만 빈티지 감성의 디지털카메라(이하 디카)와 캠코더를 다시 찾는 이가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예 장난감 캠코더, 디지털카메라로 눈길을 돌리는 이들도 있다. 개당 2만~5만원대 가격이 형성돼 있어 부담은 적다. 일반 가전 제품에 비해 가볍고 조작도 편하다. 요즘 많이 팔리는 어린이용 기기 '프링캠코더' '아카라치 미니 캠코더 카메라' '부이 디지털 카메라'가 인기 아이템이다.

10대와 20대는 디카나 캠코더 촬영 효과를 내주는 SNS 카메라 필터와 편집 앱도 자주 사용한다. 고화질의 스마트 폰으로 '빈티지' '레트로' '디토' 'VHS' 등의 이름을 단 필터로 보정해 일부러 흐릿한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캠코더·디카 들고 헤드폰 쓴 MZ…촌스러울수록 힙하네
디지털 시대에 접하는 아날로그 감성은 젊은 세대에게 새롭고 신기한 경험을 준다. 게다가 희소성까지 있는 일부 제품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게티이미지뱅크〉

◆돌고 도는 유행, 어떤 아이템 유행하나

디지털 시대에 접하는 아날로그 감성은 젊은 세대에게 새롭고 신기한 경험을 준다. 게다가 '희소성'까지 있는 일부 제품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유행은 20년마다 돌아온다'는 말을 증명하듯, Y2K의 매력에 MZ세대는 흠뻑 빠져있다.

디지털카메라뿐만이 아니다. 아이팟(MP3), 헤드폰, 옛날 게임기 등은 MZ세대를 넘어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까지 열광한다.

헤드폰은 Y2K 트렌드를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패션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기존 헤드폰의 주 이용자가 3040대를 넘어 1020대까지 확대된 것.

자연스레 소비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소니코리아에 따르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구매자 중 15~34세 비중이 2019년 31%에서 2022년 81%로 늘었다. 온라인 강의·노래 듣기 용도가 아닌 20대를 중심으로 헤드폰을 착용하거나 목에 걸친다. 스타일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포인트 액세서리로 헤드폰을 활용하는 분위기도 이 같은 결과를 견인하고 있다.

아이팟과 LP판 등의 추격도 매섭다. 아이팟(iPod)은 애플의 MP3 플레이어로, 지난해 5월 단종됐다. 이미 한참 전에 스마트폰에 밀려 더 이상 쓸모없어진 물건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최근 다시 이 아이팟을 꺼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 LP 판매량은 3년 연속 증가세다. 예스 24에 따르면 지난해 LP수는 전년 대비 줄어들었지만, 판매량은 전년 대비 13.8%로 늘었다. LP를 구매한 이들 중 20~30대 비중은 36.3%다.

다양한 아날로그 가전제품은 MZ세대의 수집 욕구와 새로운 재미 추구 욕구를 충족해 주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패션에 이어 디지털 카테고리도 Y2K 트렌드가 자리 잡았다"며 "스마트폰 사진에 비해 화질이 낮고 보정 기능이 없어도 레트로 감성 자체를 즐기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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