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억 칼럼] 불체포특권 족쇄 이제 그만 끊자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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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6  |  수정 2023-06-26 06:51  |  발행일 2023-06-26 제26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일회성 정치적 선언으로

그쳐서는 안 돼

개헌으로 종지부 찍어야

[김기억 칼럼] 불체포특권 족쇄 이제 그만 끊자
김기억 서울본부장

2004년 7월9일 국회 본회의장.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놓고 질의와 응답을 벌였다. 정 의원 "오늘날 상황에서 행정권력이, 특히 검찰권력이 국회를 탄압하려는 의도로 의원에 대하여 부당한 체포를 감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 장관 "그런 일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 의원 "불체포특권은 사실상 그 역사적 의의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장관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강 장관 "국회 스스로의 자정과 제도 개선, 관행 개선을 해나가면 논란의 소지를 많이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 의원은 불체포특권의 폐지나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고, 강 장관은 사실상 동의 의사를 밝혔다.

이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불체포특권을 둘러싼 논란은 반복될 뿐 결론은 없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불체포특권 포기에 대한 국민 공감대는 예나 지금이나 높다. 정치권은 언제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포기를 못 한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것과 같다. 갖은 비리 등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고 있는 성능 좋은 '방탄복'을 스스로 내려놓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역사는 1948년 제헌헌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5년간 이어져 오고 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할 수 없다(헌법 제 44조)는 것이 골자다. 회기 중 현역 의원을 구속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을 받아야 한다. 시대 상황이 바뀌어도 국회의원이 70여 년간 누려온 특권 중 으뜸 특권이다. 이 성능 좋은 '방탄복'의 위력은 꺾일 줄을 모른다. 지난 75년간 국회에 상정된 66건 체포동의안 중 16건만 가결됐다. 올해는 상정된 4건 중 단 1건만 통과됐다. 문제는 범죄의 경중보다는 정치 지형에 따라 통과 여부가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권의 오용이다. 본래 도입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불체포특권이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도 불체포특권을 제한하는 추세다. 미국 연방헌법은 반역죄, 중죄, 치안 방해죄를 제외하고는 불체포특권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모든 형사범죄에는 불체포특권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프랑스는 회기 상관없이 총 22명으로 구성된 의회 의장단 동의를 거치면 의원을 체포할 수 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불체포특권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도 어느 때보다 불체포특권 포기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최근 여야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잇따라 선언했다. 국민의힘 당의원 101명은 25일 현재 불체포특권 포기 서명까지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회는 지난 23일 민주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 제출을 요구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연관된 의원이 적잖다.

이 같은 움직임이 일회성 정치적 선언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어차피 불체포특권을 없애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 여야가 불체포특권 포기에 대한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포기 서명과 함께 헌법 개정까지 약속해야 한다. 내년 총선 때 원 포인트 개헌을 하면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불체포특권을 없앨 절호의 기회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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