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워커 부자 흉상을 함께 세우자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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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0 07:00  |  수정 2023-07-10 07:01  |  발행일 2023-07-10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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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논설위원

다시 호국보훈(護國報勳)을 생각한다. 가슴이 아렸다. 지난달 식료품을 훔쳤다가 붙잡힌 이가 6·25전쟁 유공자라는 뉴스를 접하고서였다. 그를 향한 한 편지글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천수를 누리며 좋은 것만 보시고, 드셔야 할 분들이 구석진 그늘에서 외롭게 살고 계신다니…'.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돼도 별무소용인가. 전쟁 유공자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는 거다.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베테랑(참전 용사)의 천국' 미국을 보자. 이 나라에서 전쟁 유공자는 각별한 존재다. 이들이 학교·관공서를 방문하거나 여객기·여객선에 오르면 방송을 통해 박수를 유도한다. 참전용사 장례식엔 유족은 물론 일반 시민도 구름처럼 모여 추모한다. 국가의 안전·자유를 지켜준 데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현이다. 한국의 국가보훈부 격인 미국 제대군인부 예산은 지난해 기준 340조원(한국은 5.9조원)이다. 베테랑의 여생(餘生)을 촘촘하고 완벽하게 케어한다. 무엇보다 "역시 미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구석이 있다. 숨은 전쟁영웅을 찾아 기막히게 스토리텔링화한다.

테드 윌리엄스(1918~2002)가 좋은 예다. 그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 선수(보스턴 레드삭스)였다. ML 마지막 4할 타자, 홈런왕 베이브 루스에 버금가는 레전드다. 놀랍게도 그는 그라운드를 뛰다 6·25전쟁에 참전했다. 해병대 전투기 조종사로. 야구를 하면서 조종은 또 언제 배웠는지.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투잡'이 가능했던 미 해군 예비역병으로 입대했다.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예비역 항공 사관후보생에 지원해 조종 훈련을 받았다. 북한군과 전투 중 죽을 고비도 넘겼다. LA 다저스 레전드인 돈 뉴컴(1926~2019)도 한반도 전쟁터에서 2년을 있었다. 미국 정부와 ML 사무국은 이들의 참전 스토리를 자국은 물론 전 세계에 알린다. '야구와 애국심의 만남'이라는 스토리로. 재향군인의날이나 용사의 기일(忌日)은 거의 축제다. 경기 전 추모와 재미를 엮은 이벤트를 열어 이들의 업적과 노고를 기린다. 과거 미국에서 6·25전쟁은 '잊힌 전쟁'이었다. 지금은 그 반대다.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우리는 어떤가. 소홀하진 않은가. 현양(顯揚)해야 할 숨은 전쟁영웅이 적지 않다. 멀리 볼 것 없다. 대구에도 윌리엄스와 같은 야구선수 출신 6·25 참전용사가 있었다. 대구 상원고 야구부 선수였던 고(故) 이문조·석나홍·박상호 학도병이다. 1950년 6월18일 제5회 청룡기 야구 우승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일주일 뒤 6·25전쟁이 나자 야구 글러브 대신 소총을 들고 나섰다. 결국 낙동강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했다. 몇 해 전 이들을 기리는 시구 행사만이 기억날 뿐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현양해야 할 분들이다.

칠곡군에 흉상이 건립되는 월턴 해리스 워커(1889~1950) 장군도 좋은 스토리텔링 대상이다. 장군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샘 워커(1925~2015)도 함께 말이다. 이 부자(父子)는 6·25 참전 영웅이다. 그러나 올해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국가보훈부 선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밴 플리트 부자와 윌리엄 쇼 부자는 포함).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렸던 낙동강 전선을 워커 장군이 지켜냈는데도 말이다. 이왕이면 워커 부자의 흉상을 함께 세우면 어떨까.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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