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구미시민의 날을 제정하자

  • 박진관
  • |
  • 입력 2023-07-12 06:56  |  수정 2023-07-12 06:56  |  발행일 2023-07-12 제27면

2023071101000327100013051
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사람에겐 생일, 기업엔 창사기념일이 있듯 도시나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이나 국민에게도 특별히 기념할 만한 날이 있다. 서울과 광역시·도를 비롯해 전국 기초 시·군 대부분은 시민의 날과 군민의 날을 지정해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구시의 경우 2018년부터 대구시민의 날을 변경하기로 결정한 뒤 2019년 관련 조례를 만들었다. 2020년부터 2월21~28일을 시민주간으로 선포하고 28일을 시민의 날로 정했다. 21일은 전국에서 최초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날이고, 28일은 2·28민주운동이 일어난 날이다. 그 이전엔 10월8일이 대구시민의 날이었다. 1981년 7월1일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100일째 된 날(10월8일)을 기념해 정한 날이었지만, 대구의 역사적 자부심과 맞지 않고 시민이 주체가 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서울은 조선 개국 후 한양 천도일(10월28일)을, 부산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함대의 부산포해전 승전기념일(10월5일)을, 인천은 조선 태종 때 인천이란 지명이 처음 등장한 날(10월15일)을, 울산은 고려 태조 때 울산지방 호족이던 박윤웅이 고려에 귀부한 날(10월1일)을, 광주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시민군이 옛 도청에 입성한 날(5월21일)을 각각 시민의 날로 정했다.

경북도민의 날 제정 배경도 흥미롭다. 신라가 매소성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 20만명을 물리치고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675년 음력 9월29일(양력10월23일)을 1996년 경상도 개도 100주년을 맞아 도민의 날로 정했다.

경북 포항은 1962년 포항항 개항 기념일(6월12일)을 2004년부터 시민의 날로 지정했고, 김천시는 시월상달(10월15일) 시 승격일을 시민의 날로 했다. 경주는 박혁거세의 신라건국일인 기원전 57년 4월 병진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6월8일)을, 상주는 신라 경덕왕 12월에 상주(尙州)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날(10월12일)을, 고령은 고령 출신 악성 우륵 추모일(4월2일) 전후를, 칠곡은 조선시대 칠곡도호부로 승격된 달에다 칠곡의 7을 더해 5월7일을 군민의 날로 지정했다.

구미에선 1990년대부터 시민의 날을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있어 왔지만, 외지인이 대부분인 신생 공업도시라서 그런지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다. 구미는 1977년 전까지만 해도 선산군에 속한 읍이었다. 이듬해 2월15일 칠곡, 금릉, 의성 일부가 구미로 편입되면서 구미시로 승격됐다. 이후 1995년 1월1일 선산군이 구미시로 통합됐다.

선산과 칠곡 인동을 포함한 구미는 고려와 후백제의 마지막 전쟁터였을 만큼 유서가 깊은 도시다. 936년 음력 9월8일(양력 10월1일) 고려 태조 왕건은 지금의 감천으로 추정되는 일리천에서 후백제를 물리치고 후삼국 통일 대업을 완수했다. 선산 고아 일원엔 태조산, 칠창리, 어갱이들, 발갱이들, 점갱이들 등 당시 전투와 관련된 지명이 지금도 불려오고 있다. 또한, 야은 길재 이후 조선 성리학의 본향이라 할 만큼 인재가 많았던 고장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경북의 2대 도시인 구미가 시민의 날을 제정함으로써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고 시민 자긍심을 고취하는 한편 소통과 화합의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민 및 기관 단체를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한 뒤 시민의 날 제정위원회를 구성해 시민의 날을 정하면 된다. 시민을 대상으로 날짜를 공모해도 좋을 것이다.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