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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 인구가 많던 시절, 이 자리에 동네 문방구가 있었다. 멀리 옛 화매초등 교정도 보인다. |
지난 11일 오후 4시쯤 영양 석보면 화매2리에 닿았다. 화매2리는 평화롭고 고요한 산촌 마을이다. 마을의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탁 트인 전경과 넓고 기복 없는 평탄한 농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민들은 사과 과수부터 고추, 배추, 담배 등 작물 농사를 짓는다.
마을 아래로 내려와 구석구석을 훑어보면 '산속 섬' 같은 느낌이다. 동네에는 흔한 슈퍼마켓 하나 없다. 마을 사람들이 애용하던 치킨집 겸 매점이 있었지만, 문을 닫은 지 꽤 오래됐다. 폐교된 화매초등 건물과 교정은 다른 용도로 이용되고 있고, 화매초등 학생들이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다녔을 학교 앞 문방구는 창고처럼 남아있다. 양조장, 한약방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어르신이 돌아가신 뒤 방치된 빈집들도 보인다.
사실 석보면은 영양에서 규모가 작지 않은 편이다. 지난달 기준 석보면 인구는 1천940명인데 영양의 6개 읍면 중 영양읍(6천967명), 입암면(2천23명) 다음이다. 하지만 고령화와 출생률 저조 현상은 피할 수 없었다. 인구의 46.8%가 65세 이상이다. 올 들어 영양에서 17명이 태어났는데, 석보면 아기는 2명뿐이었다. 10년 새 인구 감소 폭(-14.7%)은 영양의 6개 읍면 중 청기면(-16.3%) 다음으로 컸다.
72가구 122명이 살고 있는 화매2리의 65세 이상 노인은 51명이다. 최연소자는 중학생이다. 오원인(56) 이장은 "지금 마을에 50세 이하인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다"며 "젊은 사람이 유입되지 않고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다른 동네처럼 없어질 수 있겠다 싶다"고 말했다.
오래전 석보면은 지금처럼 적막한 마을은 아니었다. 김춘웅(79) 어르신은 "내가 스무 살 때만 해도 석보가 입암보다 더 컸다. 당시 입암에는 시장이 없었고 석보에는 시장이 있었다"며 "40년 전쯤에는 농사지을 사람은 바글바글한 데 땅도, 방도 없었다. 아이들도 많아서 국민학교 분교는 3개나 생겼고, 콩나물시루처럼 한 반에 60명씩 들어갔다"고 했다.
한때 200가구 700~800명에 달했던 화매2리 인구는 40년 새 반의 반으로 줄어들었고, 이제는 농번기에 베트남 등지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체 일의 90% 이상을 도맡아 하고 있다.
김춘웅 어르신은 "잘 나갈 때 대구에서 석보면으로 직행버스가 들어왔는데, 5대 중 3대는 화매에서 자고 나갔다"고 했다. 이 역시 옛일이다. 대구에서 영양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안동을 지나서 입암면을 거쳐 영양읍 소재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노선이다. 철도와 고속도로, 교차로가 없다는 의미로 '3무(無)' 지역으로 불리는 영양이다. 그나마 2개의 국도는 있지만, 석보면을 지나지 않는다. 석보면에서 청송의 동청송·영양IC까지 가는 건 15분이면 되는데 오히려 군청 소재지인 영양읍까지 가려면 재를 넘어야 한다.
마을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귀농·귀촌자들이 꾸준히 유입되는 중이다. 전체 주민 중 60명 가까이가 외지에서 왔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도 '마을 알리기'에 적극적이다. 오 이장은 동네 작가로 활동하면서 화매2리를 홍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촌에서는 바로 옆 동네 출신이 우리 동네로 오더라도 '객지'가 되는 게 있다. 그래서 귀농·귀촌을 하려 해도 텃세 장벽으로 망설이게 되는 것"이라며 "객지에서 온 사람들의 마음의 벽이 하나하나 허물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화매2리가 계속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글·사진=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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