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직터뷰] 음악인 부부 김남수·이선경씨 "비주류면 어때요? 늘 함께 해주는 시민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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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26 08:42  |  수정 2023-11-29 15:45  |  발행일 2023-07-26 제25면

김남수 이선경 명음클래식 나훈아
김남수·이선경 부부가 대구 동구 신암4동 '명음클래식'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부는 가곡은 아름다운 시가 담겨져 있기에 부르면 부를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선해진다고 말했다.

성악 독창 무대에서 성악가와 반주자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 아닐까. 청중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는 훌륭한 반주가 뒷받침돼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주는 성악가의 노래를 더욱 빛나게 하는 윤활유와 같다고 한다. 그렇다고 반주자가 성악가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선 안 된다는 게 무대의 불문율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 우열이 있는 건 아니다. 대등한 파트너십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7시 '김남수 독창회'가 열린 대구 범어대성당 드망즈홀. 이선경(음악감독)씨가 혼을 다해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는 가운데 김남수 테너(명음클래식·대구가곡사랑모임 대표)가 가곡 '첫사랑'을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이씨는 연주 중 가끔씩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김씨를 바라봤다. 둘은 부부다. 부부는 공연 활동은 물론 대구에서 '가곡 대중화'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그들의 음악 인생이 꽤나 드라마틱했다고 한다. 최근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곡에 대한 얘기도 함께.

성악가·반주자의 '가곡 대중화'

"부를수록 선해지는 것이 가곡의 힘"
일반 강좌 운영하며 대중 소통 열정
부부의 꿈은 가곡연구소와 아트센터
"대구 음악계 음대 중심 경향 아쉬워
열심히 하는 음악인 칭찬하는데 인색"

남편은 한때 '클래식 한류 스타'

일본 유학시절 여러 콩쿠르서 수상
유명해지며 오페라 무대 주역 출연
"동일본 대지진 덮치며 모든 일 잃어
우리 부부 음악인생도 그때 달라졌죠"

▶두 분 모두 이과생이었다가 음악으로 유턴했다는데….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김남수= "'범생이'였습니다. 부모님이 바라는 명문대생(연세대 화학공학과)도 됐고요. 국가기관이나 대기업 연구원이 꿈이었죠. 근데 공부한 만큼 성적이 안 나오는 거예요. 회의가 들더라고요. 그러던 중 '네가 하고 싶은 것 하는 게 최고'라는 동문 선배의 조언에 꽂혔습니다. 숨어 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시 꿈틀거렸어요. 고교 때 중창단 열성 멤버였거든요. 고민고민하다 대구에 내려와 음대 진학을 준비했습니다. 세 곳의 음대에 합격했어요. 결국 전면 장학금이 주어진 대구가톨릭대 종교음악과를 선택했고요. 명문대 간판을 초개(草芥)처럼 버렸으니 당연히 집에선 난리났죠. 대노한 아버지는 '부자의 연을 끊자'고 하셨어요. 맨발에 속옷만 입은 채 쫓겨났습니다.(웃음) 그런 아버지가 대학 4학년 졸업 연주회 때 오셨어요. 그때 비로소 절 인정하신 거죠."

△이선경= "대여섯 살 때인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를 기억해 집 부근 교회에 달려가 피아노 건반을 짚었죠. '절대음감'이랄까.(웃음) 초등 6학년 땐 성당 교중 미사에서 오르간 반주를 했어요. 음악을 계속하고 싶었죠. 그러나 부모님 생각은 달랐어요. 공부도 곧잘 했거든요. 결국 자연과학도(경북대 미생물학과)가 됐습니다. 근데 음악이 뇌리를 떠나지 않더라고요. 용기를 내 음대 강의를 두루 들었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내면이 폭발할 것 같은…. 결국 졸업 후 10년 만에 '사고'를 쳤죠. 대구가톨릭대 작곡과에 편입학했습니다. 비로소 제 정체성을 찾은 것이죠."

두 사람은 한 음악행사에서 솔리스트와 오르가니스트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한땐 '기러기 부부'였다. 남편 김씨가 2007년 일본으로 건너가 5년간 음악 공부와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김 선생님은 과거 일본에서 클래식판(版) '한류 스타'로 통했다고 들었습니다.

△김남수= "일본과의 인연은 음대 4학년 때 도쿄 국제오페라페스티벌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시작됐지요. 제 노래와 연기에 감명받은 한 현지인이 일본 유학(도쿄예술대)을 돕겠다고 해주셨어요.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죠. 근데 황당한 사고가 났어요. 국제우편으로 보낸 입학 원서가 학교에 도착하지 않은 거예요. 망연자실했지요. 어쩔 수 없이 1년을 기다렸는데 이번엔 그 후원자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결국 선회한 곳이 히로시마 엘리자베스 음대 대학원이었어요. 현지 로터리클럽 장학생도 되고,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도 했죠. 특히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학생은 당시 개교 60년 이래 제가 처음이었어요. 학교의 영웅이 됐죠. 그 덕에 히로시마시 홍보대사도 하고, 라디오 방송도 진행했어요. 현지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돼 여러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했죠. 나름 유명해지니 팬클럽도 생겼습니다. 사인회도 열었고요."

▶쭉 일본에서 음악 인생을 펼쳐도 됐을 텐데 왜 돌아왔는지.

△김남수= "호사다마(好事多魔), 옛말 틀린 게 없어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문이었어요. 모든 게 멈췄습니다. 제가 몸담은 매니지먼트사도 직격탄을 맞았지요. 거의 폐업 직전까지. 한순간에 일을 다 잃었어요. 짐을 쌀 수밖에 없었죠. 지진만 안 났어도…. 우리 부부가 일본에서 음악 인생을 펼쳐갈 계획도 다 세워놨는데 말입니다. 이 또한 운명이겠지요."

▶부부가 새롭게 찾은 길이 '가곡'입니다. 왜 '가곡'입니까.

△김남수= "가곡이 대중가요처럼 듣는 이들을 들뜨게 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가곡은 추억을 되살려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요. 사람의 심성을 선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어요.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 시(詩)를 기반으로 하니까요. 그게 바로 가곡의 힘입니다. 가곡은 프로 성악가처럼 잘 부르지 않아도 돼요. 노래를 음미하고 즐긴다는 생각으로. 저희의 모토는 '가곡 대중화'입니다. 우선, '대구 시니어 뮤직 아카데미' 어르신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어요. 아울러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매주 가곡 교실(명음클래식)도 운영 중이에요. 가곡을 부르면 표정부터 달라져요. 수강생들이 처음엔 무표정합니다. 근데 부르면 부를수록 밝아져요. 신기할 정도로. 매월 한 차례 애호가들이 직접 가곡을 부르는 무대(대구가곡사랑모임 '세상을 바꾸는 노래')도 열고 있습니다. 무대에 서고 나면 인생의 활력이 생긴다고 입을 모아요."

부부는 해마다 연말 아프고 힘든 이웃을 돕기 위한 음악회를 열어 왔다. 합창단(공무원연금공단 상록합창단·에네스 여성중창단)과 성가대(신서·성정하상 성당) 지휘도 맡고 있다. 일주일이 짧다.

▶다중(多衆)과 소통해야 하는 업(業)인데, 코로나 팬데믹 땐 많이 힘들었겠습니다.

△이선경= "코로나가 창궐할 땐 가곡교실을 열 수 없었죠. 우린 입으로 하는 일이잖아요. 수입이 아예 없어졌죠. 이를 안타까워하는 수강생들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반면 소중한 것을 배웠습니다. 사람들이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선생님 노래를 너무 하고 싶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가곡 애호가들의 이런 절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대구 음악계에서 이른바 '비주류'인데….

△김남수·이선경= "저희 부부는 대구음악협회 회원은 아닙니다. 우리 콘셉트는 '시민을 위한 평생음악교육'이니까요. 이젠 저희도 어느 정도 '티켓 파워'를 갖게 됐어요. 시민들 곁으로 다가간 결과라고 생각해요. 음악계의 판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는 방증이죠. 다만, 대구 음악계가 여전히 음악대학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은 아쉬워요. 자연히 라인 형성 등 보수·배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하는 음악인을 칭찬하는 데 인색해요. 또, 다른 지역의 실력 있는 성악가가 대구에서 공연을 해도 애써 무관심한 분위기도 그렇고. 대구 음악계가 발전하려면 '오픈 마인디드(open minded)'가 필요합니다."

▶부부의 장래 꿈은 무엇인가요.

△이선경= "저는 제 이름을 건 가곡연구소를 세우고 싶어요. '이선경 가곡연구소'(가칭). 거기서 가곡을 만들고, 가르치고, 연구도 하고 싶어요."

△김남수= "저는 진짜 큰 꿈인데, '명음아트센터'(가칭)를 설립하고 싶어요. 프로·아마추어 관계없이 언제든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입니다. 365일 음악이 흐르는 공간,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부부는 공연 때마다 대중가요를 선보인다. 한 번은 나훈아의 '사랑'을 가곡 느낌이 나도록 편곡해 들려줬다. 반응은 대박이었다. 기자는 평소 '가곡은 품위 있는 것, 대중가요는 그렇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편견이었다. 부부의 얘기를 들으니 음악엔 경계가 없는 것 같다. 음악은 소통하고 공유하는 것이기에.

글·사진=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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