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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논설실장 |
만약 세계 역대급 법무부 장관을 꼽으라면 미국의 로버트 케네디가 빠질 수 없을 듯하다. 로버트는 자신의 형이자 미합중국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의 지명을 받아 1961년 35세에 법무부 장관이 됐다. 동생을 지명한지라 말이 많았다. 케네디 대통령은 기자들의 추궁에 "동생만 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없다"고 일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지명할 때 난 왠지 케네디의 이 말이 오버랩됐다. 장관 시절 로버트는 각료 서열이 뒤지는데도 불구하고 부통령, 국무장관을 제치고 2인자 역할을 했다. 쿠바 사태 당시 두 형제가 백악관에서 고민하던 사진이 이를 말해준다. 둘 다 하버드 출신에다 출중한 외모를 자랑하던 형제는 암살당했다. 형은 대통령 재임 중, 동생은 대통령 후보였다. 미국 현대 정치사의 비극이다. 그들은 신화가 됐다.
한국의 역대 법무부 장관은 비교적 조용했다. 통치권력은 따로 있고, 법무부 장관은 뒤에서 권력의 힘을 뒷받침하는 정도로 자리했다. 고매한 연로 법조인이 장관으로 대통령을 측면 보좌한 적도 많았다. 그러다 상황이 반전됐다. 아무래도 문재인 정권 시절이다. 이름만 거명해도 될 듯하다. 문 정권 두 번째 법무부 장관인 조국, 이어 추미애, 박범계 장관까지. 조국 장관은 이제 설명이 필요 없게 됐다. 돌이켜보면 그는 좌파 쪽에서는 일종의 '라이징 스타'였다. 운동권 출신에다 머리를 쓸어올리는 특유의 외모는 대중 정치인으로 그를 키운 재료였다. 온 가족이 법정에 선 수난 없이 순탄하게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면 대통령 후보가 됐을지도 모른다. 추미애 장관도 특이했다. 그는 같은 정부의 검찰총장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국회에서 탁자를 탁탁 때렸다. 그 검찰총장이 그 덕에 지금 대통령이 됐다는 수군거림마저 있다.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 장관 한동훈 역시 전통적 장관들과는 패러다임이 다르다. 본인이 원하든 아니든 야당의 최강 정적(政敵)이 됐다. 국회 본회의장이든 상임위든 그를 물고 늘어지는 이들이(한 장관은 스토커라 표현했다) 수두룩하다. 판검사 출신 정치인들은 "선배로서 조언하건대"로 대개 시작해 "건방지다, 조급하다. 장관의 태도가 그게 뭐냐"로 한 장관을 몰아세우는 게 도돌이표 테이프가 됐다. 그렇다고 또박또박 받아치는 한 장관을 별로 이긴 적도 없는 듯하다. 앞서 '이모(姨母) 오인 사건'의 김남국은 나가떨어졌고, 직(職)을 걸어볼래 라고 제안 당했던 김의겸 의원도 정신승리는 몰라도 냉정히 보면 아니다. 한 장관이 국민의힘 국회의원 30명 정도 역할은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 장관이 지난 15일 대한상의 주최 제주포럼에서 강연을 했다. 그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건국 초기 이승만 정권의 농지개혁을 꺼냈다. 농지개혁은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조봉암 농림부 장관이 주도했다. 이는 국가 정통성과 관련 굉장히 중요한 주제다. 한 장관의 말대로 이게 없었다면 전근대적 세습 대지주, 소작농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출발부터 삐걱거렸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만에 하나 그가 정치인으로 본격 변신한다면 만만치 않은 정치철학을 담은 제주연설은 그의 첫 포석이 될 것이다. 그가 대통령 후보에 근접할 수 있다는 쪽에 내기 거는 호사가들도 있는 모양이다. 호불호를 떠나 그가 한국 정치의 뉴에이지를 대변할 수 있을까. 야권 표적이 된 터라 그의 향후 행보가 더 흥미롭겠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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