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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
30여년차 배우 이병헌은 9일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미친 연기력을 보여준다. 첫 등장부터 마지막 엔딩씬까지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서울을 강타한 대지진이라는 재난상황 속에서 아파트 주민대표로 선출된 그가 평범한 인간에서 권력욕에 물들어 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웹툰을 소재로 만든 상업영화지만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블랙코미디다. 재난상황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터치하는 한편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부동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비틀고 은유한다. 재난상황으로 생존까지도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어졌어도 인간은 집값이 떨어질까 노심초사 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이병헌은 이번 작품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탁'으로 변신했다. 단호한 결단력과 행동력으로 황궁아파트를 이끄는 임시 주민대표다. 움푹 패인 볼과 꺼칠한 피부, 그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연기가 압권이다. 이병헌의 폭발적인 연기력에 엄태화 감독은 "영탁은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재난 이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권력욕이 드러나는 인물이었다. 이병헌의 연기 하나로 다 표현이 되어 짜릿했고, 이게 영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작품 출연을 결심한 배경으로 "캐릭터 하나하나가 극단적이지 않고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 선과 악을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는 이병헌은 이번 작품에 특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병헌은 "블랙 코미디 색깔을 확실히 보여주면서 스릴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가는 작품으로, 오랜만에 신나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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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
주민대표로 선출된 '영탁' 열연
평범한 인간서 극단적 모습까지
극 전개에 따라 인물 변화 '압권'
▶시사회에서 영화를 감상한 소감은?
"지인들에게 이번 작품을 소개하면서 대지진으로 세상이 다 무너지고 아파트 한채만 남았다고 했더니 '어느 시공사냐'고 물어서 한참 웃었다. 오랜만에 만난 블랙코미디 영화로 신선함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서 영화를 제작하고도 꽤 긴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는데, 오히려 우리 입장에서는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감독님이 한땀 한땀 정성들여 후반작업을 한 것이 보였다."
▶작품출연을 결심한 배경은?
"영화 시나리오를 보면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오는 캐릭터 하나 하나가 극단적 선이거나 극단적 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정말 상식적 선 안에서 선과 악이 공존하고, 우리 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인간들이 모여서 서로 극단적 상황을 맞았을 때 보이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너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개인적으로 영화를 처음 접하면서 신선하고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영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내 집 마련이 꿈이었는데 사기를 당해서 이뤄지지 않았다. 가슴 속에 세상에 대한 큰 분노와 상실감, 우울함이 가득한 소시민이다. 재난상황을 계기로 아파트 대표로 선출되고, 숨겨진 욕망이 표출되는 인물이다."
▶촬영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폭염에 모든 배우들이 한겨울 옷을 입고 촬영했다. 정신적으로 힘든 것은 모든 작품이 마찬가지지만 이번 작품은 여기에 더해 육체적 어려움까지 겪었다.(웃음) 또 배우로서 재난상황에 처한 인물 캐릭터에 끊임없이 가까이 가려고 마음속으로 몸부림 치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영화의 매력을 소개한다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면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라고 말하고 싶다. 갈수록 극적 긴장감이 고조되어가는 가운데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음을 웃게 하는 요소가 숨어 있는 아주 묘한 정서의 영화다.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좋아하는 몇몇 시퀀스들이 있다. 영탁이가 노래 부르는 장면이 그 중 하나인데, 사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보통 감독님들이 리허설을 할 때는 카메라를 돌리지 않는데, 엄 감독님은 리허설에도 실제로 카메라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리허설로 준비한 장면에서 컷 사인이 떨어졌는데 꽤 괜찮은 장면을 잡은 것 같다."
▶영화에서 주민들이 다른 아파트 주민들을 받아들일지, 내보낼지를 두고 투표를 한다. 만약 영탁과 같은 상황을 실제로 맞닥뜨리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기 보다는 투표로 결정하자고 했고, 민주적 절차를 거치게 된다. 아마 제가 저 상황이 되었어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듯하다. '똑같은 상황이 내게 주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을 하면서 관람을 했다."
▶후반으로 가면서 영탁은 매우 극단적인 모습까지 보여준다. 연기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듯 하다
"사실 극단적 연기를 할 때는 배우들도 좀 힘들다. 일반적인 감정연기는 경험을 토대로 하면 되니까 자신있게 연기할 수 있는데, 극단적 감정을 연기할 때는 상상하면서 진행 때문에 좀 힘들다. 연기를 한 뒤에도 사람들에게 공개되기 전까지 내내 불안하다. 이번 작품을 찍고난 뒤 모니터를 보면서 '나한테 이런 얼굴이 있었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영탁의 분장이 꽤 눈길을 잡는다. 움푹 패인 볼과 삐죽한 머리, 형형한 눈빛까지 어느 한 곳도 영탁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는 평가다.
"영탁의 분장은 감독, 분장팀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상의해서 진행했다. 처음에는 평평하게 누운 M자형 머리였지만 권력의 맛을 알아가는 후반으로 갈수록 머리카락이 서는 각도와 방향도 조금씩 달라진다. 긴장이 높아질수록 눈가에도 뻘건 느낌을 더해서 마치 뭔가에 취한 듯한 느낌을 담아냈다."
▶함께 작업한 엄태호 감독은 어떤 강점을 가졌나?
"(엄 감독은 배우 엄태구의 형이다) 현장에서 함께하고 겪어본 엄태호 감독은 굉장히 말이 없고 디렉션도 없어서 조금은 막막한 감정을 가졌을 배우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자칫 저 감독님이 너무 마음씨만 좋아서 자기의 주장이 없으신 건가 이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리허설 중에도 카메라를 미리 돌려놓는 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몇몇 장면에서는 기발하다고 생각될 만큼 좋은 아이디어로 장면을 구성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작품이 완성된 후에도 개봉시기가 많이 미뤄졌다.
"우리 입장에서는 개봉시기가 뒤로 밀리면서 작품을 더 다듬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행이었다. 사실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처음에는 작품이 빨리 상영됐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어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아쉬움도 컸지만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감독님이 작품을 끝까지 놓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열심히 후반 작업을 한 것이 어떤 작품보다 큰 빛을 발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함께 작업한 후배 박서준 배우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달라.
"아주 털털하고 건강한 청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현장에서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늘상 허허 웃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렇게 좋은 청년의 모습인데 사실 촬영할 때는 미세한 감정까지도 놓치지 않는 세심함이 있었다. 함께 작업하는 동안 정말 즐겁게 촬영했던 것 같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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