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납량

  • 이창호
  • |
  • 입력 2023-08-08 06:41  |  수정 2023-08-08 06:57  |  발행일 2023-08-08 제23면

납량(納싩). 들일 납, 서늘할 량. '시원함을 들인다.'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기운을 느낀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 시(詩)에도 '납량'이라는 시어가 나오는데, 시구(詩句)를 해석하면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서 무더위를 잊는다'이다. 예로부터 피서는 나무 밑에서 부채질하며 쉬는 게 정석이었는가 보다. 고금에 걸쳐 납량의 매뉴얼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가운데 괴담을 듣거나 공포를 간접 체험하는 게 있다. 현대의 우리에겐 납량 영화·드라마가 친숙하지 않을까. 아주 오래전 국내 극장가에선 이른바 '귀신 영화'가 관객의 혼을 뺐다. '월하의 공동묘지' '목 없는 미녀' '무덤에서 나온 신랑' '살인마'…. 제목만 읽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TV가 대중화되면서 극장용 납량 영화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TV에서도 '전설의 고향' 등 납량 드라마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납량 영화는 최근까지 명맥은 이어 왔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여고괴담'이다. 1998년 1편이 나온 이후 6편(2021년)까지 만들어졌다.

이제 납량 영화·드라마의 존재감은 확실히 떨어졌다. 영상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한껏 높아져서다. 고퀄리티 'K 무비'를 비롯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OTT(넷플릭스·티빙·디즈니+) 등. 한여름 밤, 납량물 말고도 무더위를 잊게 할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최근 울산의 한 여름축제에서 과거 일제의 생체실험부대인 '731부대'를 납량 체험 소재로 준비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주최 측이 사과는 했지만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간 짓을 했다. 사족 하나. 납량의 표준 발음은 뭘까. 정답은 '남냥'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